[쉼 수필]
사람들의 성격 분류 유형은 다양하다. 혈액형으로 판단하기도 하고, 성격유형검사로 자신에 대해 판단해 보기도 한다. 주변의 지인들과 심심풀이 삼아 풀어보는 인터넷에 돌고 있는 심리테스트를 맞추며 감탄을 하는 일도 있다.
장난 삼아 주변에서 권하는 성격 테스트에 맞장구를 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나의 내면의 모습 중에는 조급한 마음이 들통나 버리기 십상이었다.
느긋하고 여유 넘치는 성격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어떤 일이 쥐어지면 우선 그것부터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곳에 집중을 못하고 마음이 급해짐을 느낀다.
서점에 즐비하게 꼽혀있는 자기 자신을 다스리며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책을 읽어 스스로를 다잡아 보기도 하지만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일에 침착하기란 쉽지 않다.
급한 걸 아는데 여유 있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뭐 어때?", "내버려 둬." 하며 마음의 여유를 한번 준 후 어느 순간 모든 것을 해결을 하는 이들을 보며 감탄하기도 한다.
고민 끝에 마음을 가라 앉히는 방법으로 무자격 다도를 시작했다.
집안 구석에 있던 찻잔을 꺼내 따스하게 찻물을 우려 따스함을 마음에 부었다.
차와 함께 억울했거나 화가 나던 일이 점점 미지근해지는 차처럼 적당한 온도로 중화되는 것 같았다.
그 기분에 취해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차에 대해 좀 안다고 자부하는 지인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고 찻잎을 구해 마셔보기도 했다.
차를 마시는 길지 않은 그 시간이 넉넉한 마음의 여유를 주었다.
인터넷으로 차에 대한 정보를 알던 중에 곱게 한복을 입고 차를 마시는 홍보영상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언니에게 물려받던 한복을 입고 공주님 놀이하듯 치마를 펄럭이며 행복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명절이 되어 한복을 입고 싶다고 한바탕 졸랐지만 새것은 가당치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먼저 설 명절의 쇠러 귀향길에 오른 동네 친구들의 고운 한복이 너무 부러워서 며칠을 졸라 울었더랬다.
조르고 졸라 얻어낸 것은 언니의 한복을 한번 입는 기회였다.
곧 고학년이 되는 언니는 학교 운동회 때 단체 부채춤을 출 때 입어야 하기에 조심히 입으라 신신당부를 했다.
마법의 옷 같았다.
한복을 입자 걸음걸이부터 행동까지 차분해짐을 느꼈다.
그 해는 고속버스를 타면 빼놓지 않고 하던 멀미도 않고 온통 한복에 박힌 금박과 수 놓인 흰색 학을 손끝으로 만지느라 먼길 달려오는 시간도 잊어버렸다.
분홍색 한복과 중간중간 수 놓인 자수 따라 끝단에는 붉은 비단결처럼 부드러웠다.
공주처럼 양손가락을 세워 치맛단을 잡고 얌전히 걷는 모습에 어른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홀로 동화 속 공주가 된 기분이었다.
해 넘어가는 저녁이 되자 시골집엔 추위가 몰려왔다.
손님맞이로 데워진 온돌마루는 아주 뜨거워 장판이 그을려있거나 냉골이라 불리며 밖의 온도를 가늠할 정도로 차가운 바닥 두 곳으로 나뉘었다.
더워지는 공기에 더 이상 방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문풍지 소리 요란하게 내며 작은 문에 얼굴이 내밀어 보니 차가운 바람이 시원하다고 느껴졌다.
좀 더 시원하고 싶어 졌다.
요리를 하느라 밝혀있는 부엌을 지나 마당까지 가는 동안 다리사이로 날리는 치맛단의 느낌이 좋았다.
몇 걸음도 안되어 시원함은 사라지고 매서운 바람이 부드러운 한복이 차디차게 비집고 파고들었다.
추위를 덜어주려 피워둔 마당 앞 장작불이 보였다.
끌려가듯 장작불 앞으로 다가섰다.
불꽃이 일렁이는 모습은 불꽃 요정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정신을 놓고 장작을 바라보다 점점 뜨거워짐을 느꼈다.
불이 붙지도 않았는데 뜨거운 열기로 공단 한복의 고름이 호로록 말려 구깃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길고 곱던 금박 박힌 고름이 떨어져 나가고 나에게도 더 이상의 한복은 없었다.
혼이 났었는지, 놀란 아이에게 별거 아니라고 위로를 해줘서 쉽게 넘어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후로 한복을 입을 기회가 생기면 그때 올라가던 한복 고름이 생각나서 당혹스러웠던 기억에 웃음이 나곤 했다.
간편하게 집에서도 입을 수 있는 한복을 찾기 시작했다.
'철릭 원피스'
상하의가 한 번에 붙어있는 생활한복으로 입기도 편리하고 한복의 느낌과 생활복으로써도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고민 끝에 구입한 한복이 도착해서 고름을 매는 순간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꼈다.
물론 가슴압박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에겐 그 느낌이 좋았다.
고름으로 묶여있는 상의는 누군가 다독여 주듯을 품에 꼭 안아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숨을 깊이 들이쉬면 잠시 마음 한편에 공간이 생겨 마음이 한결 편안해져 왔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한복 사랑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제는 일주일에 두어 번은 생활한복을 입고 출근을 하기도 한다.
"어머? 한복이에요?"
보는 이들이 잊고 지낸 한복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한결 편해 보이는 요즘 스타일에 본인도 구매해보고자 구입처를 묻기도 한다.
마음이 바빠질 때 각자 마음을 가라앉혀보는 방법을 찾는데 나에겐 포근히 안아주는 한복이 가장 큰 쉼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