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면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에 몸이 먼저 일어나고 휴일마저도 알람 시간 전에 먼저 일어나 앉았다가 다시 잠을 청해야 잠이 드는 쳇바퀴 같은 생활을 한 지 이제 1년이 다가왔다.
1년 전, 최종 합격의 전화를 받고 심장이 뛰어 잠이 들지 못했고, 아직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출근길을 먼저 가보기도 했다. 내 자리를 배정받고, 책상을 꾸미고, 뒤처진 직장인의 모습을 따라가려 옷가지를 꾸며 입으며 거울의 비치는 내 모습이 매일매일 새로웠다.
한 걸음씩 성장하고 모르는 것을 배우며 나아가는 모습에 뒤늦게 얻은 일자리에 감사하고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남들처럼 회식이라는 것도 해보고 주말의 고마움을 알았지만 모든 것은 금방 익숙하고 감사함은 무뎌져만 갔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나처럼 무채색 표정이다. 아무리 활기찬 라디오 진행자의 목소리가 버스 안을 옥실옥실하게 채워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에 저장해 둔 노래라도 들어볼까 싶어 이어폰을 귀에 꽂으려 가방을 뒤적였다. 두 손바닥만 한 가방 안에서 만져지는 물건들이 손끝마다 닿았다.
‘팩트, 립스틱, 기름종이, 손수건, 휴지, 어디선가 받아 구겨 넣은 영수증... 그리고 바스락...’
이어폰을 찾아 들척이던 손가락에 봉투 하나가 잡혀 올라왔다.
“사직서”
옆에 자리에 앉은 사람도 들리지 않을 중얼거림이 입가에 맴돌았다.
잊고 싶던 어제의 일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나의 업무는 민원인을 상대로 서류를 발급해 주는 업무를 하고 있다. 모두 바쁜 시간을 쪼개 달려와 부탁하는 업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다른 업무 도중 신청하는 민원서류는 네트워크 시대에 인터넷이나 전산처리로 집에서도 해결할 일인데 발급 요청을 할 때는 친절한 표정이 나오지 못할 때가 있다. 서로 제일 처리하기 싫은 업무이기에 미루고 밀려 결국 싫은 소리 못하는 나에게 쥐어진 것으로 생각되니 억울함이 뒤늦게 밀려오기도 했다.
절차가 복잡한 서류도 있고, 개인정보를 정확하게 확인해야 하기도 하지만 어디 가나 막무가내는 있다. 신분증 없는 미성년의 서류를 요청하며 가족관계를 증명할 서류 하나 없이 다짜고짜 언성만 높이는 사람이 어제 나에게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며 뒤를 돌았다.
“깐깐한 년”
욕을 먹어 눈물이 흐른 건 아닐 거다. 그 상황에 나서 주지 않는 동료가 미운 것도 아니다. 그저 난 이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요즘 서점에 즐비하게 베스트셀러 대열에 진열되어있는 자기 위안서처럼 나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오후 내 낙서하듯 사직에 관한 사항을 자판에 두드렸다. 두서없이 써나갈 줄 알았는데 언제나 준비되어 있던 것처럼 간결하고 명확한 이유가 화면을 채워나갔다.
‘난 여기를 떠나고 싶구나.’
엄마에게 이야기하면 뭐라 하실까? 그리 힘들게 준비해서 들어온 자리를 걷어차고 나온다면 다시 한심한 집구석 굼벵이처럼 보이겠지?... 누구보다 기뻐하고 자신이 취직이라도 한 것처럼 들떠 있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생각의 시간은 버스를 다시 그 자리에 나를 내려주었다. 나의 발은 5년째 움직이던 발걸음을 쫓아내 자리로 향했다. 주변에서 만나는 직장동료를 보면 마음과 달리 얼굴은 반사적으로 웃음을 지어 보낸다.
자리에 앉아 아침 분위기를 읽는다. 변함없는 오늘도 아침의 서두름으로 분주하고 정신없이 움직인다. 기계의 한 부속처럼 자리를 앉고 화면을 켜고 나의 업무를 뒤적인다. 나 역시 기계적인 몸에 벤 움직임이었다.
업무 시작 시종이 울리자 사람들의 얼굴은 모니터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간간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따라 딱딱한 음성이 뒤따라왔다. 가방을 조용히 열어 부적 같은 사직서를 살짝 키보드 아래에 깔아 둔다. 일에 빠져 아무도 본 사람은 없지만 누가 볼까 조용히 움직이면서도 누군가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교차했다.
“저... 서류가 필요해서 왔는데요.”
젠장. 아침이 시작하자마자 서류 타령이다. 어제의 ‘깐깐한 년’이 다시 얼굴에 나타나 버린다. 큰 소란은 아니었지만 뒤돌아 흘려버리며 나간 그 단어를 들어버린 몇몇 직원들은 미세하게 모니터 사이로 머리를 조금 내밀어 귀를 열어보는 것이 마주 보는 모니터 브라운관을 투영해 보이는 듯하다.
“저쪽에 있는 신청서에 작성하시고, 신분증 혹은 대리인이시면 구비서류 가지고 오셨죠?”
5년째 입에 붙어버린 긴 문장을 한숨에 밀어 내뱉었다. 엄마 또래의 여자분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사람들의 소곤거림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저리 응대하니 그런 소리나 듣지.’
‘또 어제같이 민원 제기하면 어쩌려고 또 저러는 거야.’
‘목소리만 친절하면 뭐해. 저 귀찮은 표정 좀 보라지.’
그래. 핑계 인지도 모른다. 어제는 몸이 몸대로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을 했더랬다. 하지만 남의 일을 도와주고 남이 자신의 성과로 되돌렸고, 참견하지 않은 일에 휘말려서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뒤집어쓰기도 했었다. 어제는 정말 재수 없던 날이었다. 그걸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서, 열심히 빠르게 해낸 결과물을 보고 잘하니 더 하라고 넘겨준 일에 대해서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더랬다. 억울함은 쌓여 화로 표현된 날이었다.
아주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그래. 나가려는 마당에 번아웃되어버린 나의 삶에 더 상처를 주지 말아야지. 나 때문에 저분까지 기분이 상한다면 난 누굴 원망할 자격도 없다.
시골 외지의 할머니들도 읽고 쓰기가 자유롭다고 하는 세상에 아직도 문맹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미소를 실어 눈을 맞추었다.
“글 읽거나 쓰기가 어려우세요?”
“말은 조금... 나가 일본 사람입니다. 남편이 한국 사람. 아이 서류가 필요해요.”
외모로는 영락없는 한국 사람 같은데 손에 쥐고 온 가족관계 증명서에는 일본 사람들이 쓰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럼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신청서에 필요한 내용은 제가 쓰고 밑에 서명란에 일본어로라도 서명만 해주시겠어요?”
“아... 난데스 떼?”
해결방법을 찾아 머리를 굴렸다. 외국어라곤 짧은 영어뿐인데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다. 혹시 하는 마음에 손짓 몸짓을 하며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역시 만국 공통에 제스처가 도움이 되었다. 쓰는 시늉, 아래만 쓰라는 시늉, 움직이는 몸짓에 알아들었는지 가뭄의 단비라도 만난 듯 구름 낀 그녀의 얼굴이 활짝 피어올랐다.
“네! 네!”
작은 체구의 그녀인데 목소리가 사무실을 쩌렁쩌렁 채웠다. 무슨 소란인가 싶어서 일에 묻혀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니터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저 필요하신 서류가...”
첫 번째 난관에 부딪혔다. 그녀가 들고 온 일어는 급하게 휘갈겨 쓴 글씨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림처럼 글씨가 하나의 곡선 같았다. 다시 써달라고 부탁을 해야 할지 다시 써 준다고 한들 읽을 자신도 없었다. 나의 표정은 그녀에게 옮겨갔고 거울처럼 손은 입가로 가고 고개는 옆으로 기울어졌다.
“제가... 일본어를 좀 아는데. 혹시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사무실 내 과묵하기로 소문난 남자 직원이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를 향해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여직원들의 킥킥거리는 웃음소리와 의자를 밀고 일어서는 소리가 한 번에 들려왔다.
“일본인이시구나.”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
“영어도 어려우신가 봐.”
“고고니 가이떼 구다사이”
“오~~~”
남자 직원의 일본어에 여자 직원들은 아이돌 팬클럽처럼 입을 모아 탄성을 보냈다. 사무실엔 남직원보다 여직원이 더 많기에 말수가 적은 남자 직원은 앉아서 서류를 작성해주는 내내 귀 끝이 붉게 물들어 꺼지지 않았다. 그 뒤에 모여든 여직원은 귀여운 남동생 괴롭히듯이 놓치지 않고 놀려 댄다.
“정 계장님. 119 신고할까 봐요. 귀가 타고 계세요. 하하하”
사무실 안은 한 바탕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준비서류를 해낸 남자 직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서류가 준비되는 동안 남자 직원은 일본인 아주머니와 함께 짧은 대화를 이어갔다.
“어제... 그분은 들어올 때부터 누군가에게 화풀이하고 싶어 하던 표정이었어요.”
“저도 나서고 싶었지만 일이 커질 거 같아서 참는데 속으로 화가 나더라고요.”
“어제 도움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막아줬어야 했는데 미안해”
여기저기 있었는지 싶었던 사람들이 서류 출력을 위해 모니터 앞에 앉은 나의 뒤에 대고 자분자분 용기를 불어넣었다. 손가락은 자판에서 익숙하게 작업을 하고 있는데 눈가엔 눈물이 촉촉하게 내려앉았다.
90도 인사를 연신 퍼부으며 그녀가 떠났다. 사무실은 다시 예전처럼 조용해졌다. 나도 그렇지만 쌓여있는 일은 스스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 회식 어떤 가들? 요즘 퇴근 후 회식하자고 하면 꼰대라는 말이 있어서 조심스러워 말도 못 하겠더군.”
맞은편 모니터 너머 늘 머리카락만 보이던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안을 했다. 환영회 때 싫은데 끌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게만 보였던 건 아니었나 보다.
“좋아요.”
“저도요.”
“금요일이니 저도 좋습니다.”
말을 꺼냈지만 주저하던 실장이 너털웃음으로 모두 참석하는 회식 장소를 본인이 알아보겠노라 나섰다. 퇴근 시간까지 우선 밀린 업무를 빨리 마무리해서 오늘은 초근도 야근도 아무도 하지 않고 같이 나서자며 다시 업무에 빠졌다.
오후 시간이 깊어질 무렵, 다시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저... 김연지 씨를 만나러 왔는데요.”
누가 내 이름을 저리 조심하게 부르나 싶어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남자가 문틈으로 나를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는 얼굴이 아니라 기억을 더듬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제가 김연지입니다. 누구... 시죠?”
사무실 명패에 적힌 나의 이름과 나를 보던 남자는 그제야 몸을 밀고 들어섰다. 그 뒤로 따라온 여자분은 오전에 서류를 떼러 온 일본인 그녀였다. 낮에 온 옷차림 그대로 남편의 손을 잡고 그녀가 다시 사무실로 찾아왔다.
“제가 남편입니다. 급히 서류가 오전 중 필요했는데 여기서 도움받지 못했다면 아마 일이 쉽게 끝나지 못했을 텐데. 덕분에 일찍 일을 볼 수 있게 되어서 잠시 인사드리러 들렀습니다.”
흰머리가 눈처럼 쌓인 노신사가 그녀의 등을 밀었다.
“감사합니다.”
억양이 어눌했지만 90도 인사는 변함없이 서로 주고받으며 쉬지 않고 굽혀댄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한 사람이 이긴 게 되는 것인지 주고받는 인사의 끝이 없다. 또 한 번 조용했던 사무실에 웃음이 터졌다.
“저희가 슈퍼를 하는데 낮에 맡기고 갈 사람은 없고 서류는 급하고, 손님이 오면 이 사람은 한국말을 못 해서 급한 부탁을 했는데 전화가 안 오길래 못하나 했었답니다. 그런데 아내가 서류를 떼어와서 아주 놀랐답니다. 전 그쪽에서 전화해서 저를 바꿔주거나, 빠진 서류가 있어서 안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모두 별거 아니라고, 당연히 할 일이라며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가게가 하도 작아서 뭘 가져와야 할지 모르다가 급히 잡히는 게 이거뿐이라 이걸 들고 왔네요. 별거 아니지만 나눠 드세요.”
점짓한 표정으로 남자가 들고 온 봉지를 열어 테이블에 흰 우유, 딸기우유, 초코우유를 내려놓았다. 더운 공기와 만나 우유갑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달려 봉지 밖으로 나왔다. 값어치로 따지자면 비싼 물건은 아니지만 더워지는 날씨에 시원하게 마실 수 있도록 가능한 차가운 상태로 전해주려 애쓰며 달려온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사무실에 6명이 있는 것을 보고 가서인지 우유가 딱 맞게 6개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아... 아닙니다. 당연히 할 일입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희는 이런 것 받으면 안 됩니다.”
실장이 나서서 우유를 조심스레 귀한 물건 다루듯이 다시 봉지에 담아 드리려 했다. 서로 난처한 눈빛이었고 갑자기 일본인 그녀가 우유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하나하나 종이 우유 입구를 열었다. 모두 아무 말도 없이 그녀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6개의 우유갑의 입구가 열리고 나서야 그녀는 남편에게 유창한 일본어로 뭐라 이야기를 했다.
“제 아내가 이건 먹으려고 열었는데 못 먹을 것 같아서 버리고 가는 거라 전해달라고 합니다. 버리셔도 되고 출출하시면 마셔도 되신다고 전해달라고 하네요.”
“버렸다. 버렸다.”
그녀는 남편의 말을 알아듣는지 고개를 연식 끄덕이며 ‘버렸다’를 몇 번이나 전했다. 그리곤 우리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듯 남편의 손을 이끌며 뒷걸음질 인사를 끊임없이 하며 사무실 문을 닫고 나갔다.
우유가 늘어져 있는 테이블에 모두 서서 미소를 지은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전 딸기우유 좋아합니다.”
남자직원이 우유를 들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런 귀한 걸 버리고 가다니. 우유가 얼마나 귀한 음식인데. 라떼는 말이지.”
실장이 흰 우유 하나를 집어 자리로 돌아갔다.
하나, 둘, 우유 하나씩을 집어 들곤 자리에 앉아 다시 업무를 시작했고 여기저기 우유 넘기는 꼴깍꼴깍 소리와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 사무실에 들려왔다. 남은 우유를 양보해주며 마지막 쥐어진 초코우유 곽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바라보았다. 숨을 한번 들이켜고 자판을 치려 하다 봉투가 자판 밖으로 비집고 나왔다. 초코우유를 한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 달콤함이 온몸에 퍼질 즈음 봉투를 꺼내 조용히 접어 가방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