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크란~

발급번호-007

by stamping ink

연말이 시작되면 여느 사무실이나 업무 마감으로 정신없이 바빠진다.

누구를 도와줄 여력도 생기지 못하고 자신이 맡은 일에 하나씩 처리하느라 시간을 쪼개 업무를 한다.

한 마리 백조 같다. 우아한 척 여유 있게 물 위를 떠다니지만 물아래 열심히 물장구치는 그런 백조.

연말은 연말인지라 백조라 부르기에는 형색들이 초췌하니 미운 오리로 보였지만...


밀려드는 업무에 구도를 짜고 정신없이 업무 진행을 했다. 작은 소원이라면 이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민원이나 다른 업무가 중간에 튀어나오지 않길 바라며 업무를 보고 있었다.

화장실이 급해서 문을 열고 정신없이 앉았는데 휴지가 없어서 다시 일어나야 하는 상황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머릿속에서 일을 빨리 마무리하고 싶다는 욕망과 구해와야 할 휴지로 다시 일어나야 해야 한다는 안타까움이 공존하여 아무것도 제대로 해지 못하고 멈춰있는 기분이다.


어려워서 외면하고 있던 일 중 하나가 오늘따라 술술 풀린다. '제발 오늘은 집중하게 도와주세요.' 하고 기도를 해보지만 나의 행실이 하늘이 예뻐할 그 정도는 아니었었는가 보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차. 탄식하는 어투에 스스로 놀라 정신을 차렸다.

엄마의 손을 잡고 아이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엄마는 예쁜 눈망울이 돋보이는 히잡을 입고 아이와 내 앞에 섰다.

한국어에 서투른지 아이가 까치발을 들고 내게 말을 했다.

10살도 채 안되어 보이는 아이가 야무지게 말을 했다.

"선생님, 재학증명서가 필요해요."

미리 작성해 왔다고 하는 신청서와 신분확인을 위해 가져온 서류를 번갈아 확인했다.

신청서의 글씨에는 학생 이름이 영어로 기재되어 있었다.


외국국적 아이였다. 영어로 표기는 했지만 낯선 중동어에 입을 달싹거려 가며 하던 일을 접어두고 발급 작업을 시작했다.

영어를 유창하게 해내는 실력은 아닌지라 또박또박 개인정보 칸을 채워 넣었다.

엄마의 언어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진한 눈빛으로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눈빛을 쏘아댔다.

큰 눈망울의 엄마의 반 크기의 눈동자를 가졌지만 연신 괜찮다고 눈웃음을 지어드렸다.


왜 검색이 안될까.

천천히 천천히. 영어다 보니 알파벳이 틀릴 수 있어. 주민번호 다시 확인하고 나머지 기재해야 할 칸에 한 자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려 화면을 째려보았다.

설마 내가 영어 철자를 틀릴 리가 있을까? 나름 토익공부도 해보고 미드에도 심취한 적 있어서 조금은 뚫린 귀인데 철자를 못 알아본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긴 알파벳을 지웠다가 다시 쓰길 반복하다가 담당자에게 문의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사라는 것이 떠올랐다.

병은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업무는 담당자에게.

담당자란 어려운 숙제를 한방에 해결해 주는 해결사다.

"학생이 조회가 되지 않습니다."

"몇 학년 몇 반 학생일까요?"

아이의 간단한 정보가 오가고 나니 정보 담당자가 웃으며 말해주었다.

"외국어로 기재된 학생은 대소문자가 정확히 일치해야 검색이 될 거예요. 중간에 a가 대문자로 바꾸시면 검색되실 거예요."


전산과 동일하게 기재되지 않으면 처리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영문까지 철저하게 맞아 들어가야 전산망은 정보를 허락해 주었다.

일사천리로 나머지 서류 발급까지 무리 없이 진행했고 어머니에게 서류를 건넸다.

깊고 긴 속눈썹이 연신 깜빡이며 아이의 머리를 숙이게 밀었다.

"고맙습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나의 바쁨으로 힘겨움을 알아주고 해결해 주느라 노력하고 있다는 걸 이해해 주었다.

나의 상황을 이해하고 오해하지 않은 채 응원해 주는 모녀가 고마웠다.


사막의 나라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지만 난 유일하게 아랍어 하나는 알게 되었다.

"슈크란"

눈꼬리가 초승달처럼 접히은 히잡 어머니의 목소리가 귀에 남는다.

바쁨에 치여서 투덜거리던 마음에 슈크림같이 달콤한 말이었다. 슈크란, 슈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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