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학교

발급번호-028

by stamping ink

"일은 할만하니?"

경력단절녀로 살다가 직장생활 1년 차가 넘어갈 즈음 엄마가 내게 물었다.


"엄마도 알지? 나 인복 있는 거... 너무 잘해주시고 많이 배우고 있어."

사회생활에 대해서는 아버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아는 것이 모두인 엄마는 막내딸의 직장생활이 많이 걱정이 됐나 보다. 궁금한 게 많은지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의 이름이나 성별, 성격부터 사무실 전경이나 위치까지 질문이 쏟아졌다. 마흔이 넘은 딸이 엄마에겐 네 살배기 아이와 같아 보이는지 어디서 실수하지 않을까 단도리도 잊지 않았다.


"요즘은 바쁘지 않고?"

"지금 서류 요청 시즌이지, 검정고시 접수기간이라 서류 떼러 많이 오지."

"검정고시?"

"엄마, 공부해 볼래? 요즘 초등 중등 졸업을 도와주는 기관도 많고, 나가서 사람들이랑 공부하는 게 부담스러우면 집에서 조금씩 준비해서 검정고시 봐 보는 건 어때?"


끝마치지 않고 영원한 재학생이 남아있는 엄마의 학업.

엄마는 동네 유일한 학교였던 서당 집 외동딸이었다.

아버지가 서당의 훈장이니 얼마나 자식들을 엄하게 가르쳤을까 싶겠지만 오빠만 줄줄 있는 집에 태어난 복덩이 딸은 금지옥엽 아가씨로 자랐다. 커다란 툇마루에 앉아 오라비들은 회초리가 휘날리는 엄한 수업이 계속되었지만 하나뿐인 딸은 무릎 위에 앉혀 곰방대로 톡톡 치며 장난치는 살가운 아버지였다고 했다. 서당에 공부하러 오는 머슴아들이 눈길이라도 닿을 때면 어린 딸을 품에 안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쳐다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감을 좋아하는 딸아이가 떫은맛에 놀랄까 봐 한입 베어 떫은 곳은 먹고 단맛 든 곳만 딸아이 입에 넣어주었다. 덜 익은 감 때문에 떫어 식사를 걸러도 딸아이가 감이 먹고 싶다면 다시 감을 집어 드는 그를 아는 이들이 상상도 못 할 딸바보 아비였다. 그러나 진한 아버지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덟 해가 지나고 급작스레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아비 옆에서 서럽게 우는 딸아이 머리 한번 더 쓰다듬어 주시곤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다.

가장의 빈자리는 집안은 흔들었다.


외할아버지의 부재로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은 엄마의 유년시절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다들 그리 살았어.'라고 말하곤 한다.

"졸업장 하나 걸어두면 좋잖아. 공부 시작해 보실래요?"

중년이 된 딸의 이야기에 노년의 어미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다 한다.

"외할아버지가 지금으로 말하면 교장선생님이지, 그 아래서 컸으니 엄마는 졸업장은 없지만 이 담에 외할아버지 만나는 날이 오면 그때 받을 거야."

"그래, 엄마. 외할아버지의 애제자였으니 우수상, 효행상, 모범상 그거뿐이야? 다 주시겠지."


엄마가 다니던 학교는 비인가 학교라고 농담을 했지만, 금지옥엽 딸은 변치 않고 그리운 훈장 아비와 함께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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