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 고손자한테도 배운다

발급번호-027

by stamping ink

열심히 달려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니 제자리라고 생각되는 날이 왔다.

무기력이란 단어가 행동에서 묻어 나왔다.

만사가 귀찮고 그냥 두면 어찌 되었든 일은 다 되어있으니 대충, 대강이란 단어가 몸에 붙어 움직였다.

다잡으려 마음을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며 애쓰지 말자로 정신 승리를 해보려 마음을 비운다.

그래 적당히, '적당히'가 제일 어렵다고 하지 않았던가...


가을바람이 낙엽과 함께 바닥에 뒹굴 때가 되면,

각 교육기관에서 영재 선출을 하는 기간이 되면 아이들의 생활기록부를 떼러 오는 민원인이 많아진다.

신청을 하고자 제출서류를 발급받으러 온 아이들은 수업방식이 맘에 든다며 만족도가 높다고 말을 하곤 한다.

추천을 받기도 하고 지원을 받기도 하니 영재교육 지원자들의 경쟁률이 높아져 간다.


영재수업을 접수하려고 아이가 서류를 발급받으러 왔다.

과학수업이 중심인 교육과정이라 재미있던 이야기를 풀어 설명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이제 갓 열 살 정도 된 녀석이 일타강사처럼 이론 설명을 해주었다.

"선생님, 대기권에서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줄 아세요?"

지구과학은 나름 재미있어했었는데 이 녀석이 고양이수염을 간지럽히는구나.

"흠, 대기권은 우리가 사는 대류권, 성층권, 중간권,... 그리고.."

"열 권!"

수업시간에 암기를 못하고 왔을 때 꾸중을 듣는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 그래. 열 권. 대류권 안에는 많은 일이 일어나지, 그 안에 공기가 흘러서 비도 오고, 바람도 부는 기상현상이 일어나는 거야."

"음, 대강 비슷하게 맞췄어요."

초등 저학년이라고는 볼 수 없는 똘똘함으로 무장한 아이가 학창 시절의 잊고 지낸 지식을 일깨워냈다.


"박사님이네~ 참 똑똑하다. 공부하는 게 재미있니? 내 기억엔 난 즐겁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너는 참 배우는 게 즐거운 모양이구나."

야무지게 대답하는 아이의 모습이 기특해서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순간 아이는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 선생님이 들어본 것 중에 제일 무거운 게 뭐였어요?"

뜬금없이 무거운 물건?


"글쎄다. 얼마 전에 생수 2리터짜리를 옮겨본 적 있는데, 그게 제일 무거웠으려나?"

"무거운 걸 들어 올리면 해내서 기쁘지요? 그리고 더 무거운 걸 들어야 지금 들어 올린 거에 소중함을 안대요."


꼬마 박사는 척척박사뿐만 아니라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성인 같은 말을 했다.


뒤돌아 볼 시간을 준 꼬마 박사의 인생의 조언으로 오늘도 힘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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