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싸움

발급번호-032

by stamping ink

반칙이란 법칙이나 규정, 규칙 따위를 어긴다는 뜻을 지닌 단어이다.

어떤 이는 이를 요령이란 잔꾀를 좋은 말로 포장하며 요구하곤 한다.


업무 중에는 요령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이들이 있다.

"그냥 떼주면 안 돼요?"

"나중에 신분증 가져올 테니 우선 발급해 주세요."

"가족관계 맞다니까요. 주민번호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름이 맞잖아요."


그들은 서류를 발급받기 위한 기본 제출서류를 가뿐히 무시하고 정중한 발급 불가 안내에도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한다.


"다른 데서는 해주는데... 어디에 신고하지?"


아니다. 절대 아닐 것이다.

다른 데서도 해주는 데는 없다.


신분 확인 하나 없이 개인정보 가득한 서류를 발급해 준다는 일은 없지만 그들은 마지막 잔꾀를 부려 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이의 마음에 불안감을 심는다.


"다른 데서도 그냥 발급해 주던데, 요령 있게 그냥 해 주세요. 주민등록증 분실했다고 했더니 다른 곳에서는 그냥 떼어줬었어요."

강요인지, 간청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던지며 경미한 반칙을 요구하는 민원인들과 기싸움이 오간다.

"신분증이 없으면 여권이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증빙서류를 제시해 주셔야 해요."

"다른 신분증이 없는데요. 이번만 그냥 떼주심 안 돼요?"

"여기에 신청인분 개인정보가 다 적혀있어요. 주민번호부터 주소까지 모두 다요. 중요하고 본인의 정보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에요. 다른 분이 와서 신분증이 없다고 하며 본인 서류 발급해 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저희는 민원인의 개인정보를 보호해 드리려 하는 거예요."

"어차피 요즘 개인정보 의미가 없다던데."

"딴 데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개인정보를 꼭 지켜드리고 싶어요. 저라도 누가 제 정보를 함부로 본다면 불쾌할 거 같거든요."

서로 밀리지 않기 위한 기싸움을 한다.

결국 그들은 안될 것을 알면서 다음에 오겠다며 사무실을 떠나곤 한다.


도움을 주기 위해 있는 자리에서 기싸움을 하게 만드는 일이 더 이상 안 생겼으면 좋겠다.

개인의 사정은 있지만 절차라는 것을 이해해 주는 수많은 사람 사이에 간혹 튀어 오르는 일들에 써버린 에너지 소비량은 어마어마 하단 걸 알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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