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도 실례, 몰라도 실례

발급번호-038

by stamping ink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색한 공기를 뚫고 들리는 "뽀옹"하는 방귀소리를 들었을 때,

늘씬한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치마 끝에 화장지를 구미호 꼬리처럼 달고 다닐 때,

앞을 보지 못하고 유리문에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헤딩을 할 때,

빈자리인 줄 알고 앉다가 먼저 앉은 이의 무릎에 앉게 되었을 때,

멋 부리기 시작할 때 눈썹 칼로 사각거리며 깎는 것이 즐거워 심취하다가 모나리자가 되었을 때.


인생에 한 번쯤 얼굴 붉히며 창피했던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다.

다시 떠올려도 어제처럼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억에서 잊고 싶은 날들이 있다.

그 상황에 처한 사람도, 그 상황을 본 사람도 민망하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민원신청서를 작성하는 민원인들 중에 집에서 근거리라 찾아올 때가 많다.

그런 사정으로 간소한 차림으로 찾아와서 빠른 처리를 받고 떠나가려 한다.


민원발급시간이 일반 사무실처럼 늦은 오후까지 발급 진행이 되지 않다 보니 급히 오는 민원인들 중엔 다시는 나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예쁘게 화장을 하고 물빛 블라우스를 입은 민원인이 서류요청을 하러 사무실에 들어섰다.

앞서 서류를 발급받은 이가 두고 간 볼펜이 테이블에 놓여있었다.

찾으러 올 사람을 위해 분실물 상자에 넣고 오겠다 양해를 구하자 그녀는 작게 읊조렸다.

"칠칠치 못하게."

그녀는 우아한 손짓으로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뾰족한 말투에 사람들의 시선이 멈춘 것이 아니었다.

머리 꼭대기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커다란 그루퍼 세 개가 머리 위에서 단단히 자리를 잡고 움직이지 않았다.

"서류를 발급받고 바로 출발해야 해서 빨리 처리 가능할까요?"

알려줘야 할까? 모른 척해줘야 할까?

사무실 직원들끼리 눈치싸움이다. 누군가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그녀는 하루 종일 저 상태일지도 모른다.

알려주어야 할지 모른 척해야 할지 난감했다.

"머리 고정이 조금 덜 되셨나 봐요. 머리에..."

나이 지긋한 직원이 조심스레 그녀에게 귓속말을 해주었다.

자신의 머리 위를 더듬던 그녀는 급히 그루퍼를 빼서 가방 안에 욱여넣었다.

얼굴은 홍당무처럼 붉게 물들고 있었다.

알려준 이를 곁눈질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며 달아 오른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그걸 왜 이제야 이야기해 주는 거예요?!"

이거 이래서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하는 건가. 하루 종일 당할 망신수를 막아줬는데 되려 이제야 알려줬냐고 짜증을 부린다.


서류를 발급받자 그녀는 급히 사무실을 떠났다.

그녀의 머리 위에 달린 그루퍼를 알려준 직원이 깊은 한숨과 함께 알아도 문제, 모르는 척해도 문제라며 혀를 차며 자리로 돌아갔다.

"쯧쯧. 저분은 알까? 신발은 슬리퍼 신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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