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급번호-040
여름 매미가 시끄럽게 울던 때가 지나니 찬바람이 나무를 흔들어댔다.
따스한 커피 한잔을 들고 잠시 틀어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을을 대표하는 부드러운 발라드는 변함없이 계절을 느끼게 해 준다.
흥얼거리는 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올 정도로 가을볕이 따스한 날이었다.
라디오에서 짧은 사연이 사무실 직원의 화두가 되었다.
"당신의 지금 소원은 무엇입니까?"
진지하기도 하고, 재치 있기도 한 여러 대답이 흘러나왔다.
시대 반영을 하듯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원하기도 하고, 추워지기 전 새로운 사랑을 만나 따스한 겨울을 맞이하고 싶다고 했다.
나보다 자식과 가족의 안위를 먼저 챙기는 이들도 있었고, 곧 닥칠 시험이나 면접 등에 좋은 결과를 바라기도 했다.
모두 각자의 상황에 맞춰 자신의 작은 소원을 나누었다.
짧은 담소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할 즈음 화려환 화장과 화려하게 손질하고 반짝이는 보석이 붙어있는 손톱을 가진 여성이 들어왔다.
신청서 작성을 위해 볼펜을 쥐었지만 긴 손톱 때문에 주먹을 쥐듯 글씨를 써 내려갔다.
보는 이가 여간 불편해 보여 엉망일 듯한 글씨체를 상상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반듯하고 귀여운 글씨가 빈칸을 채워 넣어져 있다.
신청서를 받아 들다가 그녀의 손톱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 새끼손톱엔 아무것도 없네요?"
여덟 손가락이 각각의 개성 넘치는 화려한 보석이 박혀있는데 마지막 손톱, 새끼손톱은 간단한 주황색 매니큐어만 발라져 있었다.
"이건 매니큐어가 아니고 봉숭아 물이에요. 첫눈 올 때까지 봉숭아 물이 빠지지 않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요."
어린 시절 분꽃으로 귀걸이 걸고, 봉숭아 물로 손톱을 물들이던 시절이 기억났다.
손톱 끝에 간신히 매달린 봉숭아 물이 첫눈 오는 날까지 남아있으면 어떤 이는 첫사랑이 이뤄진다 하고, 어떤 이는 소원이 이뤄진다고 했다.
"네일 아티스트가 제 직업이거든요. 겉보긴 예쁘지만 연습을 하다 보니 손톱이 남아나질 않네요. 요즘은 봉숭아 물을 모티브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 화려한 스타일의 손톱보다 전통적이지만 아름다운 손톱을 구상 중이거든요."
그녀의 화려한 손톱보다 연한 주홍색 새끼손톱이 돋보였다.
"생각보다 저희 고객 중에 주홍색 봉숭아 물 든 느낌으로 디자인해 주면 행복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추억 속에 잊고 지낸 소원이 떠오른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녀가 마법처럼 불러 낸 소원으로 행복해할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반짝이는 그녀의 손톱만큼 그녀의 표정도 눈이 부실만큼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