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다 귀

발급번호-048

by stamping ink

사적인 자리에서 모든 일에 의욕이 넘치는 이가 내게 술이 얼큰하게 오를 때 이야기를 했다.

"사회에서는 '모든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마."

그가 신규 시절 맡겨진 모든 일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뛰어들었고 어느 누군가 선의의 마음을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상처받고 그는 더 이상 곤경의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그에게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해도 강렬했던 경험이었던지 그는 수용하지 않았다.

자신을 냉혈한 업무자로 만든 사회를 원망했고 불편했던 마음이 이제는 편안해졌다고 했다.

그의 평소 생활은 절대 그런 이 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앞서 어려운 이를 돕고 자신의 것을 서슴없이 줄여 내어 주는 이였다.


평일 업무를 마치고 그와의 약속이 있었다.

그는 나의 사무실 밖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시간 무렵 직원들에게 선포했다.

"나 오늘 땡 하고 퇴근시간이 튀어나갈 거예요."

업무를 이르게 마무리했고 퇴근시간 무렵에는 내일 해야 할 일들을 미리 정비하며 종결을 하는 시점에 민원인이 사무실에 들어섰다.

하필 퇴근 3분 전에 와서 서류 발급을 요청할 건 뭐람.

어려운 발급이 아니길 빌며 신청서를 내밀었다.

목까지 내일 오시면 안 되겠냐고 말하고 싶은 걸 눌러 참았다.

직원들도 내가 갈등하는 모습을 이해한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서류 발급을 완료하느라 퇴근시간을 20분 넘겨버렸다.

내가 발급 도장을 찍으며 분주한 사이에 넉살 좋은 직원이 민원인에게 말을 했다.

"저희 업무 마감시간을 넘겼는데 담당자분께서 남아서 해주신 거랍니다. 다음번엔 조금 더 일찍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민원인은 자신이 늦은 것에 미안하다고 말을 하며 서류를 받아나갔고 민원인이 떠나자마자 황급하게 자리를 정비하고 그가 기다리는 카페로 달려갔다.


"회사에 초근 수당을 받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충성하고 그래?"

그는 내가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기도 전에 나를 다그쳤다.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서류 발급하러 오셨는데 또 오시려면 시간을 내야 하잖아. 네가 이해해 주리라 믿고 처리하고 온 거야."

그는 못마땅하게 나를 바라보며 식어버린 커피를 마셨다.


"딸랑"

카페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의 여자가 카운터로 향했다.

주인장인지 앞치마를 익숙하게 두르고 홀로 일을 하던 아르바이트생의 자리에 서서 손님들을 바라보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서로 동그래진 눈으로 바라보자 그녀가 내게 왔다.

"아. 아까 서류 발급해 주신 분이네요. 제가 발급 가능시간을 모르고 찾아가서 죄송해요. 일행분이 기다리셨구나. 제가 너무 많은 시간을 뺏었는데 다 듣고 처리해 주시느라 조급 하셨을 텐데 너무 감사해요."

그녀는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커피를 다시 따스한 커피로 리필해 주겠다고 하고 잔을 들었다.

우리는 한사코 사양했지만 그녀는 잔을 들고 가서 커피와 디저트를 가득 담아내어 주었다.


"저 이런 것 받으면 안 돼서요. 지불한 커피만 마시고 갈게요."

"퇴근하셨잖아요. 그리고 저희 서비스라고 생각해 주세요. 어차피 오늘 중 팔지 못하면 폐기하는 빵이라 이 시간쯤에 방문하시는 손님들께 무료 제공하고 있는걸요."

무료 제공이라 포장하고 준 그녀의 빵은 갓 구운 듯 신선한 향이 가득했다.


우리를 위해 자리를 비켜 카운터에 서서 다시 일을 하는 그녀를 보며 그가 내게 말했다.

"너와 나의 업무 스타일이 다른 것을 하나 알겠다."

"뭐?"

"입보다 귀. 넌 입보다 귀를 여는구나."

그가 느낀 감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있는 사무실에서 마찰이 있는 것을 알기에 그에게 슬쩍 되물었다.

"그래서? 그럼 다른 점이 좋다는 거야?"

"음. 좋아 보이긴 하네. 하지만 난 내 간결한 스타일 데로 할 거야."

이 고집스러운 녀석 같으니라고. 결국 그는 그의 스타일을 고집한다며 뜨거운 커피를 입에 댔다가 움찔했지만 다시 평온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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