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급번호-047
작은 헌책방 주인이 꿈이었던 때가 있었다.
쿰쿰하게 퍼지는 책 내음과 손끝으로 넘기는 책장의 기분이 좋았다.
학교 인근에 있던 헌책방 골목에 질서 없이 쌓인 수많은 책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새로 나온 윤기 나는 월간지 겉표지보다 구질하게 접혀 읽혔던 헌책 앞장이 정감 있었다.
용돈을 모아 산 헌책에는 활자가 전하는 이야기 외에 읽었던 이의 마음이 전해질 때의 감정.
귀퉁이에 적힌 작은 글씨, 맘에 드는 글귀에 그어있는 밑줄, 메모, 기호...
작가의 의도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책 밖의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펼쳐지곤 했다.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운전에 서툴었기에 버스로 왕복 2시간가량을 이동했었다.
첫날, 둘째 날 긴장감에 버스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실수했던 일을 복기해서 다음번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적어둔 메모를 읽었다.
민원 발급을 하며 미숙 지하여 버벅댔던 부분을 급한 마음에 신청서에 적어둔 것을 버스 안에서 펼쳤다.
지나 보니 나의 성격의 문제가 보였다.
대충, 쉽게, 두리뭉실하게 처리해도 중간 정도는 따라갈 수 있다는 자만심에 몇 번 했던 업무를 말도 안 되는 실수로 저지른 후 상사의 질책이 쏟아졌다. 겨우겨우 옆의 직원의 도움으로 복구를 했지만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쉬운 일 하나 처리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함에 눈물이 솟았다.
그때 깊은 곳에서 악착같이 해 내보 자라는 마음이 꿈 틀였다.
내 앞에 직원이 개인 사정으로 5개월 만에 퇴사를 했다.
딱 그보다 한 달만 더 버텨 보기로 했다.
나는 업무의 최전방이라 불리는 몸빵 콜센터에서도 근무했던 기억에 오기가 생겼다.
그 후로는 반복학습이었다.
매일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숙지에 숙지를 반복했다.
주변의 도움도 컸고 홀로 5개월을 넘기고 6개월도 훌쩍 넘어갔다.
1년 정도 한 바퀴가 돌고 나자 나의 자리 업무에 대한 내용은 어느 정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5월의 햇살이 버스 창밖에서 유혹하던 날,
내려야 할 버스정류장을 지나치고 단골 헌책방으로 향했다.
주인장도 바뀌고 책 매매보다는 독서소모임의 공간으로 변하였지만 한편에 쌓여있는 헌책을 구입은 가능하다고 했다.
구매한 책을 들고 버스에 올라 헌책만이 주는 쿰쿰한 냄새에 빠져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책장에 갖고 싶은 책만 사모았는데 어느덧 책장이 그득했다.
제일 구석 빛바랜 앞표지의 책이 손에 잡혔다.
'몽실언니'
제일 좋아하는 책이었다. 언제 샀더라.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책이었으니 기억도 나지 않았다.
촤라락 책장을 넘기다가 접힌 종이 하나가 툭 떨어졌다.
책갈피처럼 접힌 종이를 펴니 5년 전 민원신청서 양식에 깨알같이 주의 사항을 쓴 나의 글씨가 나타났다.
이렇게 열심히 했구나.
5년 전 어리바리했던 모습이 떠오르며 코가 찡했다.
제일 아래 서명란에 적힌 나에게 해 주는 당부의 말이 적혀있었다.
"도망가고 싶지? 도망가도 낙원은 없어. 낙원은 내가 만드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