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급번호-050
약속 장소를 잡을 때 시내의 큰 서점을 선택한다.
죽마고우의 여유로운 성격으로 약속 장소엔 언제나 제시간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
우리의 다른 시간관념으로 잦은 말다툼이 이어졌다.
해결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선택하는 것으로 극적 타협을 보았다.
책에 흥미가 없는 친구는 골목 안까지 들어서야 나타나는 서점까지 와주기로 했고 나는 서점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약속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하여 책을 즐기며 기다림의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오늘따라 녀석은 유난히 늦게 나타났다.
2시 약속을 잡았지만 녀석은 3시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두 손을 비비며 미안하다는 형량을 줄이기 위해 자신을 변호하기에 바빴다.
어린 시절부터 속내까지 다 아는 사이인지라 내가 숨기고 있는 이해한다는 표정을 관통해 읽고 나서는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는다며 되려 당당한 자세로 바뀌었다.
"미안해서 읽던 이 책은 내가 사줄게."
친구는 내 손에 펼쳐있던 책을 가로채 말릴 틈도 없이 카운터로 걸어가 결제를 했다.
"네가 사 준 책만으로도 우리 집 방 하나는 다 차겠다."
이미 봉투에 담긴 책이라 환불할 때를 놓치고 서점을 나섰다.
인적이 조금 드문 작은 카페에 수플레가 먹고 싶다는 친구와 함께 자리를 잡았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어울리는 귀여운 그릇이 우리 앞에 놓였다.
구름처럼 몽실몽실한 자태 스풀레 위에는 생크림과 시럽이 듬뿍 뿌려져 있었다.
쳐다만 봐도 이미 다이어트는 물 건너갈 자태였다.
씁쓸한 커피 한 모금과 어울릴만한 달콤한 디저트였다.
"사진 찍었지? 먹는다? 아. 그리고 책 여기."
친구가 서점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급히 계산하고 나오느라 제목도 못 봤다. 뭔 책 산 거야?"
친구는 전달하려던 봉투를 다시 낚아채서 자신의 것처럼 꺼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격증 수험서?"
얼마 전, 서류를 발급받아가며 자신을 위해 하루를 온전히 사용한다는 분의 말이 떠올라 자기 계발을 위해 읽고 있었다고 해주었다.
이 책을 구매할 의도는 없었지만 빼앗기듯 친구가 결제한 통에 책 주인이 되어버렸다.
"넌 친구 하나는 기똥차게 뒀지? 니 의지로 이런 공부 다시 시작하겠니? 내가 이렇게 문제집 사 준 겸 시작하는 거지."
"네가 늦게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읽고 싶던 소설 코너에서 골랐을 거야. 정말 덕분에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판이네. 사주려면 자격증 수험서 고를 시간이나 좀 주지. 호기심에 신기해서 꺼낸 책이었는데 그냥 사 버리냐."
수험서 칸 제일 구석에 화려한 표지가 신기해 집어서 몇 장 넘기던 찰나에 들이닥쳐 무작정 구매한 친구를 눈을 흘겨가며 바라보았다.
'매력을 디자인하라. 퍼스널 컬러 컨설턴트 자격증'
마흔 넘은 나이에 노후를 걱정하며 준비한다 하는데 친구 덕분에 생각도 못해본 길을 공부해 보게 되었다.
물론 끝까지 해내리 만무하고 몇 장을 넘기다가 나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칠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