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급번호-056
카페 방랑자의 피가 흘러넘치는 지인과 소문이 좋은 곳을 찾아서 시간 보내기를 좋아한다.
커피 맛의 미묘한 차이까지 잡아내는 절대 미각이라 칭할 커피 지식이 쌓여있지도 않지만 그저 조용히 카페의 분위기에 취할 수 있는 곳이 우리의 목적지이다.
인터넷 정보를 찾아보고 지인들의 추천을 받아 오래전 살아본 듯한 옛날 집을 리모델링한 카페의 사진이 이번 만남의 장소로 정해졌다.
소설 속 보물은 손쉽게 손에 쥐어지지 않듯이 사진 속 카페는 같은 골목을 여러 차례 돌고 돌아도 우리 눈에 띄지 않았다.
분명 사진 속 녹색 대문은 골목을 접어들면 바로 우리를 인도하듯 존재감을 나타낼 거라 생각했는데 함정에 빠진 주인공처럼 골목길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굽이굽이 골목길 사이에 있는 녹색 대문을 발견할 즈음 이른 겨울 찬 바람에 걸치고 있던 코트를 벗어 팔에 걸고 땀을 식히던 때였다.
"드디어 찾았네."
붉은 벽돌이 쌓인 옛 우리네 동네를 그대로 옮겨놓은 녹색 대문이 정겨웠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어보려 흔들어댔지만 문은 꼼짝하지 않았다.
휴일이 아닌데 분명 우리가 알아본 바로는 오늘도 영업해야 하는 게 맞는데 그 사이 코로나로 업장이 힘들어서 닫았나?
가게 연락처가 작게 적힌 간판을 보며 휴대전화를 누르려는 순간 간판 옆 입간판이 보였다.
'breaktime 2:00~4:00'
베이커리도 같이 하는 가게로 소문이 난 곳이라 중간에 다시 제빵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양해의 푯말에 흘린 땀이 얼음처럼 등줄기에 꽂혔다.
앞으로 30분은 애매하다. 포기하고 가기엔 30분이란 시간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한 난감한 시간이었다.
우리의 난감함을 다시 영업 준비하던 직원의 눈에 들었나 보다.
장사도 잘되는 집이 무리해서 손님을 받지 않기에 콧물만 훌쩍이며 직원의 바쁜 움직임만 눈으로 좇았다.
"추우시지요? 들어오세요. 대신 주문은 30분 후부터 받겠습니다."
나이 든 주인장이 기다리는 우리를 위해 문을 열어주고 따스한 물을 내어주었다.
"저희 카페엔 사진 찍을 예쁜 공간이 많아요. 추억 남기시고 계시면 저희가 영업 준비 완료되는 데로 바로 주문받겠습니다."
그녀 덕분에 그날을 충분히 잊지 못할 좋은 날로 기억하고 있다.
그날이 기억나는 것은 몸을 웅크리고 가을이지만 추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출근한 날이었다.
나의 정식 출근시간은 8시 30분이다.
사무실과 집과의 거리가 멀었던지라 나의 출근시간은 엿가락 같다.
분명 같은 시간에 출발하는데 이유 모를 차량정체면 8시 30분 졸리는 턱걸이 출근이고, 이유 없이 도로가 한산하면 8시에 도착하는 기괴한 도깨비 도로를 타고 출근을 한다.
30분이라는 오차범위가 불만이긴 하지만 늦는 것보단 일찍 도착하는 편이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어서 빠른 도착을 선호한다.
8시 5분. '늦는 것보다야 낫지.'라는 마음으로 사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른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며 사무실 비밀번호를 누르려 문 앞으로 가는데 누군가 불쑥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난 기가 약한 쫄보인지라 공포영화 한 편 끝까지 본 적 없는데 아직 어두운 복도에서의 인기척은 온몸이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아. 놀라셨나 보네요. 죄송해요. 제가 출근길에 서류가 필요해서 너무 일찍 도착했나 봐요. 방금 오긴 했는데 언제부터 서류 발급이 가능할까요?"
여자분이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어둠 속에서 내게 다가오며 인사를 했다.
"아. 제가 너무 놀랬나 봐요. 아. 흠흠. 서류 발급은 업무시간인 8시 30분부터 시작되는데요."
그녀는 시계를 보곤 안 되겠다는 표정 을지었다.
"출근시간 전에 잠시 짬 낼 시간이 이 시간뿐이라... 다른 방법으로 서류 발급하는 법을 알아봐야겠네요. 죄송합니다."
"저 컴퓨터 켜고 발급하려면 10분 정도 소요될 것 같은데 그 시간은 괜찮으세요?"
뒤돌아서는 그녀에게 기다리라 말을 건네자 그녀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다가왔다.
그녀와 함께 아직 어두운 사무실에 불을 켜고 그녀가 신청서를 작성하는 동안 빠른 발급을 위해 사전 준비를 모두 해두었다.
그녀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그녀가 나감과 동시에 직원이 출근을 하다가 깜짝 놀라 나를 보았다.
"시간이 지금 아니면 서류 신청하러 갈 시간이 없으시다 하여 지금 서류받아가시는 민원인이셨어요."
코트를 벗는 직원은 굳이 그렇게까지 도울 필요가 있냐고 사전 초과근무자라고 우수 개소리를 했다.
업무 시간 전 누릴 수 있는 여유는 줄었지만 breaktime에도 나눠 받은 따스한 물 한잔이 몸을 녹여주었듯이 나의 서류 한 장이 그녀가 필요한 곳에서 큰 힘이 되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