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반복

발급번호-055

by stamping ink

운동을 게을리하게 된 덕분에 신비한 체형이 완성되어 가고 있다.

빠져들듯 홀려대는 모니터 글자의 향연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 거북목을 갖게 되었고,

키보드 위 손가락에 잔근육이 발달하지만 막상 캔 하나 딸 때도 써먹지 못하는 쓸모없는 근육만 늘었으며,

의자 손잡이 위치에 팔을 걸기 전에 볼록 나온 허릿살에 먼저 팔이 걸쳐져 깜짝 놀라기도 하고,

움직일 때마다 '아이고'가 첫마디가 되어 대화가 시작된다.

건강함을 무기로 내밀어야 하는데 자유분방하게 내버려 둔 정직한 나의 몸뚱이는 변화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광고가 나왔다.

"우두둑, 아야. 허리디스크에 ooo"

난 허리 디스크가 저렇게 생기는 줄 알았다. 뭔가 무리하게 허리를 쓰다가 생길 수 있는 병이라 생각했다.

건강검진 결과에 늘 운동량 부족으로 나오지만 문진을 너무 성실하고 정직하게 쓴 탓으로 돌리며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려고 몸을 일으키는 여느 휴일 아침.

"어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간신히 몸을 이리저리 돌려 세면대 앞까지 전진하였으나 허리가 펴지지 않는다.

한 손으로 세면대를 잡고 한 손으로 얼굴에 물칠을 시작했다.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더라도 눈곱과 입가에 흘러내린 침 자국은 지우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병원에서는 나의 몸을 여러 차례 촬영을 해댔다.

ct나 x-ray 촬영을 할 때 흘러간 개그처럼 "예쁘게 찍어주세요'는 잊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아픈 상황에도 몸에 흐르는 유머 코드에 같은 말을 했는지 간호사는 식상한 듯 대답도 하지 않았고 가족은 "덜 아프구나."로 나의 상태를 진단 내렸다.

검사 결과는 4번 디스크였다.

아침보다 수월하게 움직이는 짐승 같은 나의 회복력에 감탄을 하며 의사의 주의사항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경청하며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를 외쳐야 하는데 뒤로 저쳐지는 동작도 가능해지니 병원을 벗어나고 싶었다.

내 꼴이 맘에 안 드는지 의사는 관리 안 하시면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거다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겼다.


막상 같은 일을 또 겪을 수 있다는 걱정과 의사의 협박성 조언은 나의 불안을 관통했다.

그 후로는 허리 근력강화 운동을 찾아보려 인터넷과 병원의 자료를 찾아보았다.

우선 의자를 빼고 기마자세로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짧게 운동을 시작했다.

몸에 익숙해지니 1초도 견디지 못할 거 같았는데 1분은 가뿐히 넘어가고 있었다.


"의자 없으세요?"

민원업무를 보던 나에게 앞에 서서 서류를 기다리는 분이 말을 걸었다.

출력을 위해 몸을 움직이던 중 의자가 어느샌가 뒤로 밀려가 있었고 아무렇지 않게 기마자세로 서류에 확인 작업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어? 의자가 빠졌었네요."

민망하여 의자를 끌어다가 자세를 잡고 남은 처리를 완료 후 서류를 건넸다.

"허리 근력이 좋으시네요. 건강 지키는 모습 보기 좋으세요."


이제 더 이상 허리로 병원에 가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한 개와 하기 싫은 것 하나씩만 매일 꾸준히 하려 노력해 본다.

하기 싫은 운동을 마치면 포상을 주듯 읽고 싶던 책 읽기를 시작한다.

이젠 삶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지키지 못하는 날은, 꼭 바지 입고 팬티 입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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