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녀의 방
언제나 제자리에 있던 물건도 관심이 없으면 존재조차 잊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의미가 부여되면 조그만 움직임도 눈에 보이게 된다.
수빈의 눈에는 '영숙'이라 불리는 할머니가 그렇게 보였다.
학교의 넓은 운동장이나 강당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모습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끼니때가 되면 기숙사 식당에서 해결하고 주방의 자질구레한 잡일을 도왔다.
틈틈이 운동장에서 앞뒤로 손뼉을 맞추며 성큼성큼 걷기도 했다.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만나면 주머니에서 사탕 같은 주전부리를 꺼내 거칠게 쥐어주기 바빠 보였다.
유난히 흥미로운 것은 기숙사 옆 당직실에 자리 잡은 영숙 할머니의 거처였다.
할머니는 업무가 끝나면 좁은 당직실에 요란하게 몸을 뉘었다.
몇 가지 없는 세간살이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좁은 공간을 쓸고 닦느라 바빠 보였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곳에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처럼 불편한 없이 생활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숙사 중정에 마련된 인터넷 활용 공간은 영숙 할머니를 관찰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중정에 설치된 인터넷 공유기는 토요일 저녁만 허용되었다.
인터넷 연결이 끊길 걱정이 없는 공간이라, 토요일 저녁에는 아이들이 자연스레 모여들기 일쑤였다.
콘센트마다 뱀 꼬리처럼 긴 케이블 선이 늘어져있고 그 선 끝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기숙사 방에서 수시로 끊기는 인터넷의 갈증과 영숙 할머니의 동태도 궁금하여 수빈도 중정으로 나섰다.
수빈은 명당이라 불리는 자리를 피해 당직실이 보이는 서가 한쪽구석에서 노트북을 켰다.
화면 오른쪽 아래 우편 봉투 아이콘에 불이 반짝이였다.
‘엄마다. 전학처리를 하려면 추천서가 필요하니 귀가 안 들리는 걸 이용해서 받도록 해봐. 너도 네 앞길정도는 스스로 잘 생각해 보도록 해.’
모니터에 빠져있던 수빈의 어깨를 누군가 두드렸다. 단발머리 아이가 수빈의 노트북을 손으로 치며 말했다.
“야. 좀 비켜. 우리 셋이 게임 좀 하려고 하니까...”
순식간에 수빈의 노트북과 케이블은 한 아이의 손에 의해 분리되었고 다른 아이는 앉아있는 수빈의 의자를 당겨 강제로 일어나게 만들었다.
떠밀리듯 수빈은 노트북을 들고 자리를 빼앗겼음에도 그 모습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올림머리 아이가 일어서는 수빈에게 다리를 걸었다.
“우당탕.”
수빈은 요란하게 넘어졌다. 중정에 모여 있던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한순간 고요한 정적이 되었다.
넘어지며 무릎을 의자 모서리에 찍힌 탓에 얼굴이 징그러워 들었다. 무릎을 모아 쪼그려 앉은 수빈 앞에 똥머리라 불리는 올림머리를 한 얼굴이 다가왔다.
“와. 벙어리는 아파도 소리를 안내네? 신기한데?”
“너 서울에서 강전 왔다며? 서울 학교 친구가 말해주더라. 친구를 죽였다며?”
수빈은 올림머리 아이를 노려보았다.
“아이코. 무서워. 나도 죽이려 하나 보네? 나 수화할 줄 아는데 볼래?”
올림머리 아이가 수빈의 노트북을 수빈에 배를 향해 던지고는 중지를 올려 욕을 했다.
수빈은 분했지만 그 자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걷는 걸음마다 아이들의 시선이 꽂혔다. 그럼에도 수빈은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다.
어디까지, 몇 층까지 내려온 지 모르겠다.
오늘따라 밤하늘에는 작은 별빛조차 허락하지 않고 어둠은 칠흑 같았다.
식은땀 범벅이 되어버린 수빈의 앞에 작은 불빛이 보였다.
벽을 더듬으며 빠른 걸음을 옮겼다.
수빈은 반딧불처럼 그 빛을 향해 걸었다.
작은 틈으로 보이는 방안에는 나무 십자가 하나와 몇 벌 안 되는 옷이 간이옷장에 가지런히 걸려있었다.
다이얼 돌려 보는 작은 브라운관 텔레비전과 앉은뱅이책상이 궁색한 살림에 제일 값나가 보이는 물건으로 보였다.
가까이 갈수록 불빛아래 작은 형체가 보였다. 소리 죽여 벽에 몸을 바짝 붙여가며 다가갔다.
편한 트레이닝 복 차림의 교장이 욕쟁이 할머니와 마주 보고 손을 잡고 있었다.
이들 사이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몸을 돌리려는데 욕쟁이 할머니의 뒷모습을 마주하는 교장의 입 모양이 수빈의 눈에 박혔다.
수빈은 교장의 입 모양을 따라 움직여보았다.
틀림없이 수빈의 눈에 보이는 단어.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