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음
무료한 일상을 견디려 관심을 두었던 할머니의 존재가 수빈에게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호기심의 관찰자에서 집요한 탐색자가 되어보니 엉켜진 실타래 같던 궁금증이 조금씩 풀려나갔다.
교장과 할머니,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았다.
그들의 좋아하는 음식, 걸음걸이, 눈가의 점 등 닮은 구석이 점점 눈에 띄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관심 두었던 할머니의 존재가 수빈에게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휴일이 돌아오면 잠을 이용하여 고여있는 시간을 보내고는 했는데 흥미로운 사건을 마주하니 생기가 돌았다.
호기심의 관찰자에서 집요한 탐색자가 되어 할머니를 지켜보게 되었다.
욕쟁이 할머니가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다. 하지만 만약 웃는다면 매일 실없이 웃고 다니는 교장과 같은 얼굴일 것 같다.
할머니와 교장과의 관계를 생각하다 보니 엄마가 보내온 메일이 떠올랐다.
수빈의 머릿속에서 보청기가 생각났다.
'보청기를 욕쟁이 할머니에게 주어 가까워지면 교장 선생님이 나를 위해 추천서 정도는 써 주지 않을까?'
외국에서 유명하다는 의료업체가 만든 고가의 보청기가 수빈에게는 많았다.
엄마가 사준 보청기란 비싼 가격만큼 엄마 스스로의 죄책감을 덜어낼 용도였으니 수빈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수많은 보청기를 담아둔 주머니를 찾으려 다 풀지 않았던 짐을 헤집었다.
'이건?'
뜻하지 않게 잊고 지낸 작은 상자가 손에 잡혔다.
굳이 눈으로 확인해 보지 않아도 상자존재가 손끝을 통해 머릿속에 닿았다.
소인국 사람들의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이 생긴 상자가 어린 수빈에게는 보물 1호였다.
작은 크기의 정교하게 만든 보물 상자는 아빠가 만들어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수빈은 아빠가 보물 상자를 주던 날이 떠올랐다.
아빠는 수화를 배울 수 있는 휴대용 지침서를 넣어 수빈에게 주었다. 수화로 소통할 수 있는 단어가 그림으로 그려있는 보기 쉬운 책이었다.
“상자 안에 우리의 특별한 암호가 있어. 이걸 공부하고 나면 우리는 특별한 암호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재미있겠지?”
수빈의 눈이 반짝였다. 아빠는 춤도 못 추는 사람이 춤추듯 어설프게 팔을 움직였다.
“암호를 알고 나면 수빈이의 소중한 걸 지켜 줄 거야.”
그 후로 수빈은 '보물 0호는 가족'이라는 수화를 보여주기 위해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여 공부했다.
천둥번개가 요란히 쳐댔지만 햇살이 비추던 요상한 날, 부모의 큰 싸움이 벌어졌고 아빠는 어설픈 손동작만 남기고 떠나갔다.
'미안해. 수빈아.'
수빈이 열심히 공부한 수화도 보여주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갔다.
이제 수빈은 적막 곁에 홀로 남겨졌다.
폭풍우 치는 것처럼 오열하고 울부짖었지만 아무도 수빈의 마음속 요동치는 물결을 잠재워줄 사람은 없었다.
눈물이 마를 때쯤 소중한 상자에 아빠가 선물해 주었던 체리 모양 귀걸이와 엄마가 쥐여 준 보청기를 넣었다.
더 이상 보물상자를 열지 못하도록 눈물과 함께 꼭꼭 잠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