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담장
영숙은 이 동네를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다.
영숙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거의 가족처럼 함께 자라온 이들이다.
타지에서 왔다가 다시 구름 흐르듯 사라지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기만 하지 잡아 본 적은 없다. 구름은 언제나 뭉실뭉실 다가와서는 포근하게 다가왔다가 먹구름이 되기도 하고 언제 있었냐는 듯이 휘 떠나기도 한다. 영숙뿐 아니라 이곳의 사람들은 구름 같은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숙의 눈에 작은 구름 하나가 들어왔다.
작은 체구의 여자아이는 조각구름같이 언제나 혼자였다.
언제나 쉬이 떠나려 준비하고 있는 것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오늘따라 노을에 마음이 녹아들었는지 잠시 앉아 쉬고 있던 교내 벤치에 조각구름이 우물쭈물 다가왔다.
어쩜 저리 겁도 많고 소심한지 한숨이 나오려 했다. 다가오는 것을 아는 척하면 다시 숨바꼭질하듯 숨어 버릴 것만 같아 모르는 척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2학년 1반 이수빈이에요.’
'까막눈'이라 불리던 영숙에게는 수빈의 보여준 글자들은 지렁이처럼 보였다. 결핍은 있었지만 부끄러움은 없었기에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아온 것이 70년이 넘었다.
“이놈의 가시내는 뭐라 하는 거야? 말로 해봐. 말.”
생각해 보니 수빈이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라는 걸 들어본 적이 있다. 대화는 더 이상 진전하기 어려웠다.
수빈이 급히 주머니를 뒤졌다. 급한 마음에 주머니를 뒤져 나온 보청기와 붉은 귀걸이가 손바닥 위에 올려졌다. 수빈은 황급히 보청기를 손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영숙에서 수빈이 내민 보청기를 빤히 바라보다 수빈에게 물었다.
“나 가지라는 거야?”
수빈은 입 모양을 알아듣곤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이 가시내 보게. 내가 불쌍해 보이냐?”
영숙은 수빈의 손을 매몰차게 밀어냈다.
수빈의 손에 쥐여 있던 보청기와 붉은 귀걸이가 흙먼지 사이로 날아가 버렸다.
고개 떨군 수빈이 묵묵히 땅바닥에 자세를 낮추어 쪼그려 앉았다.
영숙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물밀듯이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래. 난 불쌍한 사람이야. 겨우 열다섯 살에 동네에 낯선 난봉꾼에게 끌려 겁탈당했지. 그리고 애가 들어섰다. 지우고 싶었지. 어른들 아시면 경칠 일이거든. 그 썩을 놈이 잘못한 것이 아니고 몸단속 하나 못하는 내가 잘못한 일이 되어버릴 테니까.”
넋두리하던 영숙은 문득 수빈이 알아들어버릴까 잠시 말을 멈추었다.
하지만 수빈은 한쪽만 찾은 보청기를 손에 들고 남은 한쪽을 찾아서 흙바닥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중이다.
“그래. 너는 안 들리니 내 속을 내보여볼까? 열다섯에 아이를 품고 지우려고 양잿물을 먹고 동네 뒷산을 그리 굴렀어. 아이가 죽길 바라면서. 그런데 목숨이 질기기도 하지 그것이 태어나더라고. 난 부모한테 죽을 만큼 맞았다. 집을 나가라 등 떠미는 걸 버티고 버텨 용서를 구했어. 내 잘못도 아니었는데... 동네 소문은 내 행실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지만, 아들과 나는 바르게 살았어. 근데 하필 내가 배에 품었을 때 죽어라 죽어라 해서 그런지 간질이 갖고 태어났지. 고칠 방법이 없었어. 그땐 병원도 약도 없었지만 돈도 없었거든. 어느 날 그 녀석이 옥상에서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간질을 한 거야. 염병할 간질 같으니...”
“어머니. 정우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오랜만에 듣는 거 같아요.”
“아이코, 깜짝이야.”
영숙은 뒤에서 인기척을 내던 교장을 인식하지 못했다.
“교장, 미안하구먼. 요즘 내가 목소리가 자꾸 커져 싸서...”
“그날도 이랬죠. 정우가 떠나가던 그 노을 길던 그날. 그때 정우가 간질 하는데 옥상에서 몸이 떨려 떨어지는 걸 잡아 줄 수 없었던 게 아직도 꿈에 나타나요.”
“바보 같은 소리. 정우가 자꾸 니 꿈에 나타나면 망할 녀석 내가 오지 말라 욕 한 바가지 해줘야겠다. 썩을 녀석.”
“어머니. 정우 그리우시죠?”
“어미 두고 떠난 제일 불효막심한 놈을 누가 그리워해. 시부럴.”
“어머니. 옆에 수빈 학생은 정우 같은 아이예요. 어머니가 정우처럼. 아니 저처럼 품어주세요.”
수빈은 바닥의 흙 사이에 보청기와 함께 날아가버린 붉은 귀걸이를 찾느라 바닥에만 온정신이 꽂혀 보였다.
“어머니도 귀가 점점 안 들리시는 것 같아 걱정됩니다. 수빈 학생에게 한글을 배워 보세요. 아이가 맘 줄 곳 찾으면 둥지들 속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시부럴... 내가 왜 해야 하는데? 저 기지배는 영 말대꾸도 없고.”
“마음을 닫아 귀와 입도 닫혀서 그렇대요. 어머니가 찬찬히 다가가 주세요. 제가 부탁드려 볼게요. 어머니도 한글 배우고 싶어도 하셨고. 어떠세요?”
영숙의 대답이 끝나기 전에 교장은 양복바지를 올려 잡고 수빈 옆에 쪼그려 앉아 붉은 귀걸이를 주었다.
그리곤 수빈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빈은 화들짝 놀라며 허둥지둥 교장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교장은 무릎을 접고 수빈에게 눈을 맞추었다.
“수빈 학생. 자 이거 찾는 거지?"
수빈의 손바닥 위에 바닥에 뒹굴었던 붉은 귀걸이를 전해졌다.
"이제 나도 하나만 도와줄래? 우리 청소 선생님 귀가 잘 안 들리셔. 한글 공부를 하셔야 하는데 수빈 학생이 도와드려 볼 수 있을까?”
'추천서'
수빈은 엄마가 이야기했던 말이 생각났다.
눈만 깜빡이던 수빈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염병. 내 의사는 하나도 없는 건가?”
영숙의 중얼거리는 소리만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