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

9. 틈새

by stamping ink

어젯밤 무섭게 내리던 빗줄기가 그치고 수빈과 영숙은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 나란히 앉았다.

햇살은 빗물을 말려 버리려는 듯 내리쬐었고 수빈의 팔목의 핏물도 말라버렸다.

영숙은 수빈의 팔을 잡고 자신 쪽으로 몸을 거칠게 돌렸다.


“내 들었다. 너 귀만 안 들리는 거지. 말은 할 수 있다며? 근데 왜 말은 안 하는 거야? 그러고 있다고 누가 불쌍하다고 챙겨준다더냐?”

노려보는 수빈의 눈빛 따위 아랑곳없이 영숙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이런 손목시계로 다 가려진다고 생각하냐? 시부럴. 가린다고 모든 게 다 가려지냔 말이야.”


영숙의 손에 이끌려 수빈은 등나무 벤치에 앉혀졌다.

영숙의 손에는 작은 종이컵이 쥐어져 있었다.

한 개인 줄 알았던 종이컵은 두 개로 겹쳐있었다.


“이걸 종이 전화기라 하지? 이거 내 아들 녀석이랑 많이 했더랬다. 자 이거 잡고 가만히 서 있어 봐.”

영숙은 수빈의 손에 종이컵 하나를 쥐여 주곤 줄이 팽팽해질 때까지 뒷걸음질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영숙은 종이컵을 입가로 가까이 대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들놈이 하나 있었어. 바보처럼 몸으로 울고 하늘로 날아가 버리더라. 아니. 날아갈 줄 알았는데 바닥이 하늘인 줄 알고 떨어졌으니 날아가는 느낌이었겠지. 시부럴.”

아린 마음 담긴 목소리가 실을 타고 미세하게 울려나갔다.


한참을 가슴을 치며 이야기하던 영숙은 말을 멈췄다.

멀리서도 희미하게 보이는 건, 수빈이 종이컵 줄을 팽팽히 잡아 입가에 가져다 대고 있는 모습이었다.

알 수 없는 감촉이 종이컵에 닿았다.


마르고 앙상해진 손가락으로 입 근처에 있던 종이컵을 당겨 귀로 옮기며 선을 손으로 잡았다.

선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종이컵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시부럴.... 시부럴... 엉엉... 시부럴.. 으아앙... 시..부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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