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
관심이 없으면 제자리에 있던 물건도 존재조차 잊힌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의미가 부여되면 조그만 움직임도 눈에 보이게 된다.
수빈의 눈에는 '영숙'이라 불리는 할머니가 그런 존재가 되었다.
영숙의 손길이 닿은 학교의 넓은 운동장이나 강당을 정리하는 ㅊ
-영숙할머니 관찰일지-
1. 끼니때가 되면 기숙사 식당에서 해결하고 주방의 자질구레한 잡일을 도움.
2. 틈틈이 운동장에서 앞뒤로 손뼉을 맞추며 걸어 다님.
3. 아는 사람을 만나면 주머니에서 주전부리를 꺼내 한사코 쥐어보냄.
4. 쉴 새 없이 움직이다가 점심시간이 지나면 등나무 벤치에 앉아 꾸벅거리며 졸아댐.
5. 운동장 뒤 텃밭에 여러 작물을 심어 두고 수시로 수확물을 사람들에게 나눠줌.
수빈이 바라보는 영숙 할머니의 행동들은 기이하면서도 귀여웠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기숙사 옆 당직실에 자리 잡은 영숙 할머니의 거처였다.
단출한 세간살이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좁은 공간을 쓸고 닦느라 바빠 보였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곳을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처럼 불편함 없이 생활하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