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암호

9. ㅁㅁㅁㅁ

암호

by stamping ink

수빈은 친구들과 거리를 두며 혼자 다녔지만, 근래 들어 아이들이 모이는 중정을 자주 찾게 되었다.

거창하게 '미래존'이라 현판이 박혀있는 기숙사 중정에는 유일하게 인터넷 공유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인터넷 공유기의 자율사용은 저녁만 허용되었다.

연결이 끊길 걱정이 없어서 매일 저녁에는 아이들이 자연스레 모여들기 일쑤였다.


기숙사 방에서 수시로 끊기는 인터넷의 갈증과 영숙 할머니의 동태도 궁금하여 수빈 역시 중정으로 나섰다.

이곳의 유리창은 넓은 운동장과 학교 뒷마당까지 다 볼 수 있어서 영숙 할머니를 관찰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이미 중정에는 벽면에 설치된 콘센트마다 뱀 꼬리처럼 긴 케이블 선이 늘어져있고, 그 선 끝에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명당이라 불리는 자리를 피해 당직실이 보이는 한쪽구석에서 노트북을 켰다.

화면 오른쪽 아래 우편 봉투 아이콘에 불이 반짝였다.

‘엄마다. 전학처리를 하려면 추천서가 필요하니 귀가 안 들리는 걸 이용해서 받도록 해봐. 너도 네 앞길정도는 스스로 잘 생각해 보도록 해.’


모니터에 새겨진 글자가 아리게 가슴을 후벼 팠다.

혼자만의 슬픔에 빠진 수빈의 어깨를 누군가 두드렸다.

단발머리 아이가 수빈의 노트북을 손으로 치며 말했다.

“야. 좀 비켜. 우리 셋이 게임 좀 하려고 하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빈의 노트북과 케이블은 한 아이의 손에 의해 분리되었다.

또 다른 아이는 앉아있는 수빈의 의자를 당겨 강제로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었다.

떠밀리듯 자리를 빼앗겼음에도 그 모습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올림머리 아이가 일어서는 수빈에게 다리를 걸었다.

“우당탕.”

수빈은 요란하게 넘어졌다. 중정에 모여 있던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한순간 고요한 정적이 되었다.

넘어지며 무릎을 의자 모서리에 찍힌 탓에 수빈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무릎을 모아 쪼그려 앉은 수빈 앞에 올림머리 아이의 얼굴이 다가왔다.

“와. 벙어리는 아파도 소리를 안내네? 신기한데?”

“너 서울에서 강전 왔다며? 서울 학교 친구가 말해주더라. 친구를 죽였다던데?”

수빈은 올림머리 아이를 노려보았다.

“아이코. 무서워. 나도 죽이려 하나 보네? 나 수화할 줄 아는데 볼래?”

올림머리 아이가 수빈의 노트북을 수빈에 배를 향해 던지고는 중지를 올려 욕을 했다.


수빈은 분했지만 그 자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걷는 걸음마다 아이들의 시선이 꽂혔다. 그럼에도 수빈은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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