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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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by stamping ink

매미소리가 하늘을 찢기라도 할 듯이 울려대는 뜨거운 여름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루를 쪼개 쓰는 농사꾼들 역시 오침시간이 되면 나뭇그늘을 찾아 몸을 뉘었다.

쉴 새 없이 뛰어노는 골목대장 꼬맹이들도 더위를 피해 움직임을 줄였다.

세상이치를 아는 어르신들은 얼음 띄운 미숫가루 한 사발을 나눠마시며 해질 시간을 기다렸다.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여름을 견뎌내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의 열기는 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교실 안은 에어컨의 존재가 무색하게 열기로 가득 찼고, 교과서는 무더위를 식힐 부채의 역할로 바뀌었다.

학교 앞 구멍가게 아이이스크림 통은 점심시간 뛰쳐나간 아이들로 금세 동이 났다.


더위에 지쳐 늘어졌던 아이들이 갑자기 술렁였다.

그 시작은 창가 자리의 '스피커'라 불리는 아이의 외침에서 시작되었다.

"어? 외제차다!"

아이들은 동네어귀의 생선가게에 붙어있는 벌레퇴치 테이프에 붙은 초파리처럼 유리창에 다닥다닥 붙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 올린 오래된 건물과 넓은 운동장을 가르며 번쩍거리는 외제차가 달려왔다.

흩날리는 흙먼지보다 조용하게 차 문이 열렸다.

아이들의 시선은 차에서 내리는 여자의 온몸에 박혔다.

무릎까지 오는 까만 정장에 푸른 실크 블라우스는 여자의 움직임을 따라 물결쳤고, 목과 귀에서 반짝이는 보석은 햇살과 부딪쳐 그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연신 눈을 깜빡이면서도 계속 그녀의 모습을 좇았다.


교내에 웅성거림이 메아리처럼 번져갔지만 수빈은 책상 위의 노트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할머니한테 오늘은 좀 어려운 단어일 듯한데 쉽게 알려줄 방법은 없을까?’

교장에게 부탁받은 이후 시작된 할머니와의 한글 공부도 이제는 제법 속도가 붙고 있던 터였다.


골똘히 생각에 빠진 수빈의 어깨를 누군가 두드렸다.

수빈이 자신을 본 것을 확인한 '반장'이라 불리던 아이가 야무지게 말을 했다.

"교장실로 오래."

입모양을 알아보도록 또박또박 말을 하고는 친구들 무리로 사라졌다.


수빈은 교실을 나서서 복도를 지나 교장실 앞에 섰다.

왼손바닥을 펼쳐 교장실 문에 대고, 오른손으로 조심히 노크를 했다.

행여 힘조절에 실패하여 너무 세게 두드릴까 봐, 오른손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교장실 문을 열리자 냉랭한 공기가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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