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암호

25. ----&----

암호

by stamping ink

영숙이 전해준 종이컵에는 기다란 명주 실이 이어져 있었다.

과학시간에 배운 실 전화기가 생각났다.

두 사람이 실이 팽팽해진 컵을 쥐고 말을 하면 실의 진동을 따라 전화기처럼 대화가 들리게 되는 실험이었다.

수빈은 열외였지만 짝꿍끼리 신나게 실험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부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걸 종이 전화기라 하지? 이거 내 아들 녀석이랑 많이 했더랬다. 자 이거 잡고 가만히 서 있어 봐.”

영숙은 수빈의 손에 종이컵 하나를 쥐여 주곤 줄이 팽팽해질 때까지 뒷걸음질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영숙은 종이컵을 입가로 가까이 대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 들어 줄라냐? 나는 아들놈이 하나 있었더랬다. 약하게 태어난 놈이라 용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가 봤는데 '간질'이라 부르는 몹쓸 것이 몸에 붙었다더라. 약도 쓰고 굿도 해봤어. 하지만 그놈이 바보처럼 몸으로 울고 하늘로 날아가 버리더라. 아니. 날아갈 줄 알았는데 바닥이 하늘인 줄 알고 떨어졌으니 날아가는 느낌이었겠지. 시부럴.”

아린 마음 담긴 목소리가 실을 타고 미세하게 울려나갔다.


"그놈이 죽고 나서도 억척스러운 어미가 걱정이 되었는가 보데? 어미도 따라 죽지 말라고 지처럼 허약하고 부모손길 못 닿은 녀석을 친구라고 곁에 뒀더라. 그게 교장이여. 억척스럽게 떠난 놈처럼 키웠다. 그런데 그놈이 너를 부탁해서... 음?"

묵힌 아픔을 끄집어내며 이야기하던 영숙이 말을 멈췄다.

멀리서도 희미하게 보이는 건, 수빈이 종이컵 줄을 팽팽히 잡아 입가에 가져다 대고 있는 모습이었다.

알 수 없는 감촉이 종이컵에 닿았다.

주름진 손가락으로 종이컵을 당겨 귀로 옮겼다.

선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영숙의 종이컵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시부럴.... 시부럴... 엉엉... 시부럴.. 으아앙... 시..부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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