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잠시 멈추고 햇빛을 가려주는 작은 틈의 여유가 찾아왔다.
시계 초의 흐름도 느끼지 못하고 하루를 보내다가 주말이 되면 바람이 흘러가는 시간도, 매미의 여름 노랫소리도, 구름 사이로 햇살 조각도 잊고 지낸 시간에서 찾아내는 보물이다.
부르는 사람 없고 찾아야 할 사람 없는 주말의 한가운데서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에 급히 달려왔던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작게 쉼을 쉬려 노트북을 열어 읽고 싶던 이야기를 읽으려 노트북을 켰다.
검은 바탕에 하얀 글씨가 화면에 가득 찼다.
전자기기 사용이 늘어나고 눈의 피로도는 점점 늘어났다. 운전도 해야 하고 일상생활도 해 내야 고 직장에서 업무도 해야 한다. 눈가의 미간은 이미 깊이 파일 데로 파여버려 덥수룩하게 앞머리로 이마를 가려왔다.
나와 같이 불편함을 갖은 이가 어느 날 나의 노트북을 보더니 자신의 노트북과 같은 방식으로 써보라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까만 바탕에 하얀 글씨가 빼곡하게 올라왔다.
마치 화면이 80년대 중반 친구를 통해 하이텔이라 불리던 한국통신의 전화통신망의 화면이 기억났다. 무료로 배포하던 뚱뚱한 모니터와 키보드가 일체형으로 된 단말기를 전화국에서 받아다가 집안 식구가 모두 잠 들고나서야 유선 전화기 선을 뽑아 단말기에 연결했다. 접속을 하려면 참 요란한 소리가 났다. 높은 기계음에 누구라도 깨면 혼이 날까 단말기에 이불을 덮고 초조하게 접속이 되길 기다리곤 했다.
'다크 모드'
화면이 어두우니 처음엔 적응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원이 되지 않는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리저리 글씨는 깨기도 했고, 표현해 주지 못하는 화면도 상당히 많았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한데 눈이 참 편해지더라고요, "
나를 위해 화면을 변경해주고 불편하면 다시 복귀해 사용하라 설명해주는 마음이 고마워서 어색한 다크 모드로 사용을 하기 시작했다.
눈치채지 못하게 익숙함이 생겼다. 어떤 날은 까만 바탕에 별빛처럼 흰 글씨가 박혀있는 활자들이 쉽게 읽힐 수 있도록 빛으로 다가왔다. 어둡고 칙칙하기만 하던 화면에 나도 모르는 마음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다크 모드는 반대편의 마음으로 바꿔 볼 수 있는 이해의 모드가 되었다.
감정이 생긴 일이나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을 반대로 생각해보고 나와 마음이 다른 이의 마음도 반대로 읽어보게 된다. 여유 없이 보지 못했던 마음과 인식하지 못하고 놓쳐버린 마음들을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