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소설]
6. 끝머리
전주는 언제부터인지 고즈넉한 오래된 한옥과 달리 북적거리는 사람들의 열기가 가득하다. 발이 닿는 곳마다 아기자기한 전통의 미가 흘렀고 사람들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이날을 기억하려 담아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 소개된 맛집들은 하나같이 홍보용 사진을 내어 걸고 유명 연예인 사진들과 함께 사람들의 줄을 세웠다. 민도 그들 사이에 섞여 끝이 보이지 않는 아무 줄이나 서 보았다. 뭔가 색다른 경험 같아서 줄 선 곳에서 파는 아무것이나 사보는 일탈을 해보려 하니 자신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신선했다. 30분 정도를 내어주고 민의 손에는 모주 한 잔을 테이크아웃 커피 용기에 담겨 손에 쥐어졌다. 새로운 경험에 즐거워하며 빌려 입은 선녀 같은 한복을 입은 아씨와 도령들이 과거에서 찾아와 돌아다니듯 전주의 골목골목을 함께 누비고 있었다.
차가운 모주의 시원함으로 잠시 더위를 쫓은 듯했으나 몸 안에서 점점 뜨겁게 올라오는 온기에 민은 시원한 실내가 절실해졌다. 어디든 상관없다고 생각이 들을 무렵, 작은 보람판 걸어 둔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전주비빔밥’
여느 다른 맛집처럼 요란한 광고 없이 세월이 묻혀있는 가게가 민을 끌었다. 오랜만에 밀어보는 알루미늄 미닫이문은 높은 고음의 소리 내며 옆으로 밀렸다. 따가운 높은 소리에 눈을 찡그리며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식사시간이 조금 넘어서서 그런지 가게 안은 조용했다. 주인이 나오길 기다리며 문 근처의 식탁에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잡았다.
“어서 오세요.”
인상 좋은 노파가 민에게 다가와 소주 브랜드 로고가 그려있는 물병과 스테인리스로 된 물 잔을 내려놓고 되돌아간다. 메뉴판을 주고 가리라 생각했던 민은 당황스러웠다. 어르신이라 잊은 건 아닌가 하고 벽에 붙은 메뉴라도 볼까 해서 눈을 들어보니 단출한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단품 메뉴 전주비빔밥’
‘1인 1메뉴’
나란히 붙어있는 두 장의 종이는 주방으로 들어가는 노파를 다시 부를 필요를 잊게 해주었다.
지방 특색 음식이라 하지만 찾아오는 아기 손님이나 같이 온 손님과 다른 음식들을 접해보고 싶은 사람들의 배려 없는 고집이 종이에 고스란히 적혀있다. 벽 선반에 올려있는 오래된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한참 불붙은 야구선수들의 모습과 흥분한 듯 들리는 아나운서 목소리만 흘러나온다. 가게 내부에는 4인 테이블 5개가 이 가게에 맞아 줄 수 있는 손님의 수를 알려주고 있고 음료 냉장고 안에서 시원해야 할 음료는 냉장고 안의 전등이 깜빡이며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일부러 손님의 눈길을 잡으려 고치지 않은 건지, 단품 하나 해낼 수 있는 노파의 가게에 손대줄 사람이 없어 방치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민은 구석에서 혼자 바람을 불어 줄 사람 찾지 못하고 허공을 향해 머리를 움직이던 선풍기를 잡아 근처로 끌고 왔다. 은색 선풍기의 파란 날개는 시간이 오래됨이 한눈에 보였지만 불어내는 바람으로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날개 살에 걸어둔 오색실이 선풍기의 바람 따라 춤추듯 일렁이는 모습이 이곳의 모든 것을 섞어놓고 있는 것만 같았다. 더운 날, 그것도 햇살이 내리쬐는 거리를 걸으며 모주를 마셨더니 보이는 것이 다 이상하게 보인다.
“어? 민이 씨”
“하하하. 우연이야? 인연이야?”
혼자 가게를 두리번거리는 민의 등 뒤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여기 앉아도 되죠?”
자기 자리에 앉듯 민의 앞자리를 소리 내어 의자를 끌어 앉는 A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B는 A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야. 너 예의 없이 행동하지 말랬잖아. 민이 씨가 혹시 혼자 식사하고 싶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껴도 되는 건지, 여기서 만날 분이 있는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냐?”
민은 그녀들의 짜그락거리는 모습이 오전과 데자뷔 같다는 생각에 웃음을 지었다. 아침에 나온 기차 안의 풍경과 같은 모습으로 그녀들이 다시 다가왔다.
“괜찮아요. 배가 고파서 찾다가 눈에 띄는 가게라 들어왔어요.”
“거봐, 거봐. 괜찮다고 하잖아.”
소리만 요란하게 맞은 한 대가 아프기라도 한 건지 민망해서 그런지 맞은 어깨를 비비며 A가 자리에 앉았다.
“여기 유명한 집이래요. 전주비빔밥만 하고, 웬만하면 셀프고, 오면 알아서 한 그릇 내어주는 그런 곳이래요.”
민의 옆 의자에 앉는 C가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곤 얼굴을 붉히며 다시 말을 했다.
“제가 거의 다 도착해서 실수했다고 들었어요. 술이 너무 약해서... 불편하셨죠?”
“아니에요. 금방 도착해서 불편할 새도 없었는걸요.”
미안해하는 C에게 고개를 저어가며 이야기를 했다.
“모두들 마음은 좀 편해지셨어요?”
처음 가게에 들어온 민처럼 두리번거리는 그녀들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초면에 실례가 많았을 수도 있겠네요.”
“왠지 오랜 친구 같아요. 우리...”
“좋은 이야기도 아니고 처음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니 부끄럽기도 하네요.”
“고민은 혼자 하면 독약 같아서 입에 물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몸 안에 퍼져 버린다 하더라고요. 이리 뱉어내는 것만으로도 마음도 평안하고 참 좋네요. 과거나 미래에서 온 고통에 아파하는 것보다 현재의 나의 행복을 위해 우선순위를 바꾸어 보려 해요.”
민의 말에 동시에 눈을 마주한 넷은 서로의 마음을 안다는 듯 마음이 따스하게 번져가는 것을 느꼈다. 민은 그녀들에게 들어갔다.
민은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찍어 두려 휴대폰을 꺼내려 가방을 들추는데 커다란 물방울 모양 파츠가 자꾸 가방 지퍼에 걸렸다. 민은 뭔가 결심을 했는지 애써 돈 들여 한 파츠를 잡아당겨 떼어버렸다. 자유로워진 손가락으로 가방 안쪽에 손을 집어넣어 검은색 동그란 머리끈을 꺼내 입으로 물었다. 그리곤 파마를 한 동그란 단발머리를 끌어 모아 두어 번 양손으로 머리매무새를 단정히 하고는 질끈 매었다. 삐져나온 머리카락 없이 아침마다 공들여 매만지던 머리카락을 묶었더니 시원함과 개운함이 밀려왔다. 지금의 모습을 여러 장의 셀카로 담고는 휴대폰을 다시 넣다가 가방 안쪽 라벨 철자가 하나 틀린 것이 눈에 들어와 입가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좋은 일 있나 보네. 혼자 피식피식 웃는 걸 보면... 맛있게 먹어요.”
가게 안에 유일한 손님을 위해 노파는 노란 놋쇠 그릇에 소담히 담긴 먹음직스러운 비빔밥 한 그릇을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