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흐르는 강

[쉼 수필]

by stamping ink

동트기 이른 새벽, 돌아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채웠다. 살짝 내려앉은 안개를 뚫고 버스는 쉼 틈 없이 달려간다. 마음이 들썩이는 계절이 다가와도 동지같이 매일 같은 시간 버스 안의 사람들은 제각기 갈 곳을 시계처럼 변화 없이 움직이고 있는 새벽 버스다.

새벽의 어둠을 버스 안의 불빛이 지켜주며 작은 쪽잠으로 눈을 붙이는 승객들을 비춰주지만 덜컹이는 진동에도 같은 자리 같은 장소에서 몸을 버스에 맡기고 낮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승객들은 정신없이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치며 깊은 잠을 자다가도 내릴 장소가 다가오면 지친 눈꺼풀을 들어 올려 붉은색 내림 벨을 누른다.


정차 방송이 나오지 않아도 곧 내릴 곳이 다가옴을 느끼고 나 역시 억지로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모든 것이 싫어졌다. 모든 것이 미워졌다.

자신의 감정으로 남의 상처 따위는 아랑곳 않고 자신만 지켜내는 이들 사이에서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날카로운 칼날 같은 이기심에 깊어가는 상처로 마음이 말라갔다.


안개 틈으로 버스 창밖에 보이는 작은 강가는 메말라 버린 강물이 나의 감정처럼 바닥을 훤히 들어내 보이고 있다.

강가의 작은 돌멩이들이 속살 들어내곤 한때는 넘치듯 흐르는 물이 가득했던 강물이 어느 도시에서나 있을 법한 계발로 인하여 마른 바닥만이 강가였음을 알려주듯 자리하고 있다. 세월 낚던 강태공들도 하나 남김없이 강물과 함께 사라지고 낮은 물가에서 물놀이하던 어린 시절도 모두 강물이 마르듯 기억 속에서도 흘러갔다. 친구들과 물수제비 놀이를 하거나 물장구치기도 하고 고민이 있을 땐 반짝이며 흘러가는 강물만 봐도 포근하던 넓고 웅장했던 나와 우리들의 장소는 기억에만 남겨졌다.


연일 안개비가 내리며 새벽을 적시고 버스 안의 눅눅한 공기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의 힘겨움을 대신해주듯이 내려앉았다. 자욱했던 안개에 시야에 담기는 것이 보일 즈음에서야 강가의 강물이 눈에 들어왔다.

강물이 흐르는 모습이 보인다.

비가 온 적도 없는데 강물이 흘러가고 있다.

미간에 힘을 주고 창가에 얼굴을 바짝 대어 본다.

흐르고 있는 안개. 강물처럼 강가를 가득 품고 안개가 흐른다.


지키고 싶은 온기 있는 물결이 마음에 흘러들었다. 지친 일상에 한계라는 단어로 덮어버린 수많은 나의 모난 마음의 조각을 꺼내 물결 따라 다듬어 둥글려본다.

강물의 풍요로움에 힘들었던 마음을 떠내려 보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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