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정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나섰다. 다가오는 명절에 친척에게 보낼 물건을 고르러 나선 길이었다.
백화점 식품관에는 명절맞이 화려한 포장의 과일들이 즐비했다. 그중에서 제일 알이 크고 커다란 과일상자 앞에서 엄마는 직원을 불렀다.
"엄마, 너무 비싼 거 아냐?"
가격표를 혹시 보지 못했을까 싶은 마음에 슬쩍 보여드렸다.
"이 정도 가격은 줘야 맛있다더라."
예쁘게 포장된 과일을 사 먹어본 적은 없어도 나눌 때는 과감하게 집어 드는 엄마였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벌이가 생겨났을 때 엄마를 이끌고 억지로 귀금속 가게를 끌고 간 적이 있다. 낮은 유리장 안에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귀금속의 자태에도 엄마는 눈길 한번 주지 않으려 했다.
"엄마, 엄마가 골라보라니깐."
"난 손이 못생겨서 이런 건 안 어울려."
힘줄이 이리저리 튀어나오고 마디가 두꺼워 어울리지 않는다며 주인장의 눈치를 보며 자리를 뜨려 애썼다.
결국 첫 월급이 선물로 받은 월급의 일부를 드렸지만 엄마를 위한 용돈은 급히 필요한 생활비에 섞여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젠 나의 딸이 대학생활을 시작할 나이가 되었다.
첫 아르바이트 월급을 쥐고 와서는 선물을 하고 싶다고 난리였다.
"받아라. 받아. 애기가 빨간 속옷 사준 다하잖니. 그거 받아줘야 애도 좋은 기운 받는 거야."
엄마는 손녀의 마음을 이해해주라며 받으라 성화였다.
"엄마도 내가 첫 월급 받았을 때 안 받았으면서."
작고 낮은 엄마의 혼잣말이 들려왔다.
"네가 힘들게 벌어온 것 어미가 어떻게 쓰니. 미안해서 그런 거지."
오랜만에 나선 백화점 나들이가 아쉬워 매장을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엄마의 팔짱을 껴고 필요한 것 없냐는 말에 그저 구경만 한다며 매장을 돌고 돌았다. 엄마의 나잇 또래가 모여있는 곳을 지나치는 중 사람들이 모인 곳에 발걸음이 멈추었다. 중년 의류 코너에 마네킹이 계절을 바꿔 입은 고운 옷이 입혀져 있었다.
"엄마. 외출복 없지? 등산의류 그만 입고 저거 사 줄 테니 입어봐."
눈치 빠른 직원이 부리나케 곁으로 다가왔다.
"손님. 이건 이번 주에 들어온 신상인데요. 신상은 세일을 안 하는데 저희가 명절맞이 행사를 진행해서 가격 좋게 해 드릴게요. 입어보셔요."
백화점 의류치곤 괜찮은 가격을 제시했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엄마는 한사코 몸을 빼며 직원에게 생각해 보겠다는 말만 남기고 나를 이끌고 나왔다.
"괜찮아. 엄마 사 입을 돈 정도는 있어. 안 사줘도 돼."
"매번 옷 한번 못 사주게 하고 말이야. 게다가 저거 가격도 싸게 나왔다고."
"싼 게 비싼 거야. 싸다고 자꾸 사면 비싸지는 거야. 엄마 사 줄 돈으로 너도 좀 꾸미고 그래. 나이 더 들어도 여자는 여자라더라. 엄마가 옷 하나 사줄까?"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쉬면 몸이 아프다며 벌어오는 생활비를 이제는 경조사비 외에는 노인네 둘이서 쓸데도 없다며 되려 자식, 손주 입에 뭐하나 더 넣어주고 싶어 여전히 안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