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반지

[쉼 수필]

by stamping ink

손톱 끝 달려있는 봉숭아 물 자욱 따라 통통한 손가락 길 끝에 오래된 노란 금가락지를 걸었다. 입시에 매달려 멋 부리기와는 담쌓고 살던 딸아이는 반지를 끼운 손가락의 어색함을 익숙함으로 바꾸려는지 반지의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돌려본다.


노랗고 볼품없는 화려하지 않던 반지. 나의 스무 살 반지.


1996년을 시작하는 새해맞이 행사가 점점 수그러들고 음력설도 지나갔을 무렵, 봄이 다가오기도 전에 봄이 주는 포근함이 퍼져가고 다들 새로운 계획, 새로운 다짐에 한 해가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누군가에는 그저 1996년이지만 나의 또래에게는 96학년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빛나는 시기였다. 또래들의 어설프게 꾸미고 처음 발라보는 화장품이 처음이란 단어와 맞아떨어져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 붉은 립스틱 하나에도 반짝이던 그 모습의 아이들 중 96학번이라는 그룹으로 이어진 아이들이 있었고, 96년 입사동기라고 묶인 그룹이 생겨났다.


친구들과 대학에 대한 꿈을 꾸고 유치한 상상 속 연애 이야기에 얼굴을 불태우는 대학생활을 꿈꾸었다. 하지만 눈을 감고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았다.

엄마의 몇전, 몇 푼짜리의 부업으로 밤새우던 시절, 작고 짧게 버릇처럼 내쉬는 한숨소리는 집안 사정을 둘러보지 않고 내 욕심만 내버리기엔 한숨의 깊이가 마음에 박혔다.

언젠간 대학이란 내가 원하면 갈 수 있는 길이라고 마을을 드러내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내가 선택했으니 후회도 없을 거라 이야기를 했고, 조여 오는 아이들의 학비에 힘겨워하던 부모님은 내심 마음을 놓으시는 것 같았다. 나의 꿈을 잠시 접어두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미련을 마음속 깊이 감춰두고 입사할 회사를 찾았다. 몇 번의 면접으로 출근 날짜가 정해지고 어색한 정장을 입어보던 나에게 엄마는 작은 상자를 꺼내 쥐어주었다.

“내 성격이 나도 싫은데 어쩜 나랑 똑같니. 직장 생활하다가 급한 일 있거나 공부하고 싶은데 필요하면 언제든지 팔아서 너한테 써.”

조금 손해 보는 것이라 생각해버리고 욕심 없는 모습에 마음이 쓰여 더는 말 상자만 매만지셨다.

노란 반지는 아무 무늬 없이 상자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내 딸, 스무 살 된 거 축하해. 엄마가 우리 막내한테는 이것밖에 못해 줘서 미안해.”

검지 손가락에 딱 맞는 반지가 떨어지는 눈물을 맞고 더욱 반짝였다.


나의 스무 살이 곱으로 지나버리고 나의 딸이 스무 살이 되었다. 반지의 의미에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손가락 마디에서 스무 해 같이 지내던 반지를 빼어보니 반지 속에 스무 살 이후로 숨어있던 반지 모양 속살이 다른 손가락과는 다르게 하얗게 속살을 내비쳤다. 태어나서 옹알이를 하고, 아장아장 걷고, 초등학교 입학식과 예민해진 사춘기의 모습이 노란 링을 벗겨낸 손가락 하얀 마디처럼 투명하게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갔다.


아이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며 스무 해 전에 나의 엄마가 되어보았다.

나의 엄마.

누구보다 행복해지고 어떤 일이 닥쳐도 지켜달라 작은 기도를 넘칠 만큼 채워 반지에 담아 아이 손가락에 걸어주었다.

스무 해가 무색하게 반지는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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