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

[쉼 수필]

by stamping ink

'셋도 많다.'라는 구호가 있던 시절에 막내딸은 그다지 집안의 귀한 존재는 아니었다.

70~80년대 가난이 평범하던 그때는 모든 집안의 기대가 아들에게 쏠리는 것이 당연하던 때였고, 남은 딸들은 어떻게든 부모에게 남은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애쓰던 시절이었다.


공부 잘하는 자식은 학업성적으로 관심을 끌고, 외모가 출중한 자식은 애교로 마음을 차지했다. 형제들 사이에서 내 자리 지키기도 쉽지 않았기에 흘리는 칭찬도 갈급했다.


외동딸 친구네 집에 들렀던 날,

처음으로 방에 놓여있는 침대라는 것을 보았다.

살랑이는 이불과 폭신폭신한 베개는 붉은색에 장미모양이 화려한 담요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저 바스락 거리는 이불과 혼자 쓰는 커다란 방에서 살아본다면 행복한 꿈의 유효기간이 없을 것 같았다.

나도 친구의 방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소공녀의 주인공이 되어 언젠가는 나를 찾아올 부자 어른이 나타나길 바랬고, 나의 곁을 돌며 숨어 도와주는 키다리 아저씨가 빨리 나를 찾아주길 바랬다.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는 부모님이 사다준 인형을 가지고와 자랑을 했다.

그 아이는 내게 손도 못 대고 눈으로만 볼 수 있게 허락을 했다. 뭔지 모를 분노가 올라왔다.

친구가 방을 비운 틈을 타서 인형을 찾지 못하게 폭신 거리는 침대 밑으로 숨겨 놓고 친구 집을 빠져나왔다.


난 못된 샘바리라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죄책감에 배에서 탈이 났다. 언감생심 아프다는 말은 꿈도 못 꾸고 꾸역꾸역 잠을 청했다.

늦은 저녁이 돼서야 땀 내음 술내음이 섞인 아버지가 거친 손이 끙끙대는 소리에 곁으로 다가와 이마와 배를 쓰다듬었다.

따끔따끔 밤송이 수염으로 얼굴을 비비는 통에 머리가 뜨거워지려 할 때 아버지의 손길이 이마에 닿았다.

"우리 막내딸이 아프구나. 막내딸 귀하게 키워야 하는데 미안하구나. 착하게 잘 커줘서 고맙다."


다음날 인형이 없어진 줄도 모르는 친구와 함께 아이의 방에서 인형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북쩍이는 집에 돌아와 낮동안 햇살 냄새 묻은 이불에 형제들과 발만 내밀고 잠이 들었다. 바스락거리는 침대가 아니어도 단꿈을 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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