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에서 풍기는 향기
이른 아침. 평소대로 이불을 정리하고, 기지개를 켠 뒤 트레이닝 복으로 환복 했다. 회색 바지와 하얀색 후리스를 입어 흡사 곰에 가까운 모습은 누가 봐도 대충 주워 입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동네에서만큼은 대충 살고 싶다.
손에 잡히는 파란색 비니를 눌러쓰고 집밖으로 나왔다. 밤 사이 비가 내려 흥건히 젖은 도로와 차가운 기온 위로 하얗게 피어나는 입김. 분명 엊그제는 따뜻했는데, 오늘은 다시 추워졌구나 생각이 들었다. 온도가 내려간 탓에 잔뜩 몸을 움츠리고 평소대로 수목원을 향한 걸음. 크게 한 바퀴를 돌며 한 시간을 가득 채울 무렵, 에어팟에는 파란색 오이 비누향이 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한 노래에 빠지면 질리도록 듣는 경향이 있다. 2019년은 이 노래가 바로 그런 노래였다. 사랑 노래라면 질려하지 않는 내가 사랑 노래가 질렸다 말하는 노래에 빠졌다는 것도 조금 웃기지만, 라우브 특유의 시원하고도 은유적인 목소리에 나는 매료되었다.
그 노래가 안개가 자욱하게 낀 숲 사이에서 흐르고 있다. 평온한 일상의 시작 위로 일렁이는 파도. 높게 친 파도는 해일을 일으키며 나를 덮쳤고, 나는 휩쓸려 싱가포르의 추억까지 떠내려갔다.
2019년의 너는 참 웃기다. 돈도 없으면서, 여행은 하고 싶다며 혼자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손에는 백만 원 밖에 없으면서 그걸 여행에 온전히 다 쓴다는 것이. 그래도 그게 참 너다워 좋아. 2주간 코타키나발루,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브루나이까지 많이도 다녔다지? 잠은 가장 싼 곳으로, 음식은 가장 현지인 다운 것으로 전전 긍긍하면서 말이야. 지금은 그게 참 안쓰럽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참 대견하고 예뻐.
너는 그때 줄 이어폰을 끼고 라우브 노래를 들으며 여행을 했잖아? 무더운 싱가포르에서 이 노래를 통해 시원함을 느꼈다며 좋아하는 네 모습이 참 그리워. 노래 하나에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네가 참 좋았으니까. 지금의 너는 어떠냐고?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고 있어. 물론, 그때의 네가 내 원동력이기도 해. 네가 없었다면 나도 없었을 테니까.
오늘 내 귓가에 그때의 네가 듣던 그 노래가 나왔어. 평소라면 그저 그랬을 일상에 이 노래가 나를 다시 두근거리게 만들더라. 우리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그의 음악을 좋아하나 봐. 시원한 향기를 품은 노래를 말이야.
우리는 이 노래를 통해 매번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아. 억지로 찾진 않을 거야. 가끔, 우연하게 이 노래가 들렸을 때, 그때 다시 너를 찾을 거야. 그리고 그 순간이 온다면 다시 인사할게. 여행 잘하고, 멋진 추억 만들고 와. 그럼 이만.
너의 먼 미래일 하람이가.
2023.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