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장보고 다듬고, 김장이 끝이 났다. 11월엔 몸이 안 좋은데 김장을 끝으로 근육통도 몰아내기 위해 목욕탕으로 향했다. 목욕탕으로 혼자 향하는 마음이 좋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목욕탕 특유의 습하고 히노키탕이 없은데 히노키탕 같은 냄새가 난다.
그 냄새가 좋다.
내가 국민학교 2학년, 동생이 1학년이었을 무렵, 겨울이면 엄마는 2.3주에 한 번씩 학교 끝나고 동생을 만나서 목욕탕에 갔다 오라고 시키셨다. 등교하는 2학년 가방에 수건, 샴푸, 옷가지등을 챙겨주며 꼼꼼하게 "때"를 밀고 오라며 학교에 보냈다. 막냇동생이 4살 정도였으니 애 셋을 한꺼번에 씻기는 건 힘드셨을 꺼라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렇게 둘이 목욕탕에 보내는 우리 엄마는 용감하다.
그 당시에도 그 모습은 신기했는지 목욕탕에 동생과 내가 들어가면 너희 둘이 왔냐며 아줌마들이 놀라곤 했다. 나도 엄마 닮았는지 나름 용감하게 그렇게 동생이랑 목욕탕에 다녔다.
또 한 번은 엄마랑 딸 셋이(우리 집은 딸 셋, 딸 부잣집이다) 목욕탕에 다녀오는 길에 버스를 탔다. 버스 뒷좌석이 재미있었던 우리는 맨 뒷 자석에 셋이 쪼르륵 앉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처음 보는 아저씨는 "셋이 마빡이 훤하네~~"하셨다. 이마가 넓은 편인데 목욕까지 하고 나왔으니 더 훤해 보였으리라.
그 당시는 정도 있었지만 무례함도 있었다.
1980년대다.
신기한 건 그 얘길 듣는 우리도 무례함을 몰랐다. 같이 "ㅎㅎㅎ" 웃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사람 간의 선이 더 확실하고, 거리도 더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만 해도 "애기엄마! 내가 등 밀어줄게~"하며 등을 밀어주시고 본인의 등도 내밀던 분들이 있었는데 요즘엔 없다.
옆 사람과 1미터의 간격을 유지하고 그걸 누가 침범해서 50센티가 되면 불편해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40도 온탕"이라고 쓰여있는 탕으로 들어갔다.
따듯함이 온몸에 퍼지며 온몸의 근육통을 풀어내는 것 같았다.
요즘은 서로 사람 간에 눈을 마주치는 것은 실례다.
더군다나 목욕탕에서 태초의 모습으로 있는데 다른 사람을 쳐다보는 것은 실례이다.
멍 때리는 것을 잘하는 편이 아니지만 온탕의 두꺼비 조각이 입으로 내뿜는 물줄기를 보며 눈에 초점을 없애본다. 난 다른 사람을 보지 않는다. 하는 표정으로..
서너 명이 다들 그런 표정으로 탕 속에 있는 것이 웃기기도 하지만 여전히 난 아무 생각 없다는 표정으로 10분쯤 버틴다.
다시 자리로 돌아갔는데, 탕에 들어갈 때는 옆자리가 비어있었는데 어떤 분이 앉아계셨다. 내 자리랑 굉장히 가깝게.. 물 한 바가지 부으면 물이 닿을 정도의 거리였다.
난 자리에 앉으며 내 의자를 벽 쪽으로 조금 당겼다.
그분도 그걸 느꼈는지 의자를 반대쪽으로 조금 옮겼다.
그 순간 내가 너무 거리를 두나? 선을 긋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난 솔직히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것이 편하다.
누군가의 숨결이나 체온이 불쑥 들어오는 것은 불편하다.
하지만 문득 '사람 사이가 점점 이렇게 멀어져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움이 불편해진 만큼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기대거나 정을 나누는 순간도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정확하게 '경계'를 인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게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이 되기도 하지만 마음을 닫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상대방이 마음을 닫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거리를 둔 건 나였지만 마음까지 닫은 건 아닌데 그렇게 옆 사람이 느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분도 너무 가까운 것은 불편하셨으리라 생각한다.
목욕탕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어야 하는 공간에서 여러 사람과 서로의 공간을 지켜주며 적당한 거리를 찾는 것, 나는 오늘도 조금씩 익숙한 거리와 온도를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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