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다시 묻는 질문들
이번 겨울에 피천득의 수필집 하나를 구매하여 소파 옆 한켠에 두고 틈틈이 읽었다.
나는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기 위해 한국 수필집을 읽었다. 그중에 피천득의 수필이 내 마음을 휘어잡았다. 익히 알고 있던 <인연>, <오월>과 새로이 읽게 된 <수필>, <나의 사랑하는 생활>등 겨울 내 읽고 또 읽었다.
언젠가는 내가 생각하는 '인연, 오월, 수필'을 나의 언어로 써보고 싶다. 피천득 선생님은 노년엔 수필을 쓰지 않으셨다고 한다. 본인의 작품을 뛰어넘을 글을 쓰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노년에도 글을 쓸 수 있다. 계속 발전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
피천득의 <나의 사랑하는 생활>을 읽으며 그 글을 모티브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오늘은 그 글을 쓰려고 한다.
나는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한 껏 따뜻해진 해를 받으며 산책하는 생활을 사랑한다. 해는 항상 최선을 다해 따듯함을 빛으로 비췄지만, 겨울의 해는 왠지 멀리 느껴지는 차가운 해였다. 갑자기 따듯해진 햇빛에 반가운 마음이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하고, 상쾌한 공기를 폐 깊은 곳까지 스며들게 호흡하는 산책을 사랑한다. 아직은 찬 바람이지만 손을 내밀어 바람을 손바닥에 담아보고 손끝에 스쳐 보는 것을 좋아한다.
봄이 되면 파란 새순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만져보는 것을 좋아한다. 각각 생김새는 다르지만 모든 잎은 대칭을 이루며 자라나는 것이 신기해 가만히 바라본다. 어떤 잎은 매끈하고, 어떤 잎은 일정한 간격으로 주름이 있다. 매끈한 잎보다 주름을 채우느라 힘들었을 잎을 보며 우리 인생을 생각한다. 자연의 모든 것은 인생을 닮았다. 자연을 사랑하는 이유다.
딸과의 쇼핑에서 평소에 잘 입지 않았던 빨간색 스웨터를 사서 돌아오는 길이 행복하다. 세월에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얼굴도 예전처럼 밝지 않지만 스웨터를 입으니 얼굴이 밝아진 것 같아서 거울을 보며 웃어본다. 어느새 중년이 된 내가 있지만 지금의 나도 좋다.
압력솥에 쌀을 씻어 안치고 '딱딱딱'소리와 함께 불이 켜지는 소리를 좋아한다. 잠시 후 압력솥의 뚜껑의 추가 돌면서 '칡칡칡'소리를 낸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 시간을 사랑한다. 솥이 본인의 임무를 다하며 열심을 다하는 소리 같다. 그 소리 끝에 아들은 '밥이 너무 맛있다'며 한 그릇을 뚝딱 비우는 그 시간을 좋아한다.
나는 향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 삶에 향을 입힌다. 샴푸의 향도 예민하게 고르고, 섬유유연제의 향도 꼼꼼히 고른다. 향수도 좋아한다. 플로럴계열의 향도 좋아하고, 어떤 날은 우디향이 좋다. 시트러스계열의 향이 좋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가장 좋아하는 향은 비 온 다음날의 숲 속의 냄새다. 한 방울의 비가 땅을 적시고 나뭇잎을 적셔서 뿜어 나오는 냄새를 사랑한다. 온 대지와 나무, 풀잎이 품어내는 숨이 상쾌하고 푸르다. 비 온 다음날은 꼭 동네 작은 산을 거닌다.
나는 물을 좋아한다. 수영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물이 있는 곳에 있으면 창의로운 생각이 난다. 샤워할 때, 설거지할 때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고 소리를 들으면 좋은 생각이 난다. 하얀 파도 일렁이는 바다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사람들의 삶을 보는 것이 흥미롭다. 그래서 시장을 좋아하고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사람은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기에 삶의 방식과 모습도 제각각인 것이 흥미롭다. 그 모습들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을 좋아한다. 보통 성공한 삶, 실패한 삶, 의로운 삶, 쓸모없는 삶등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모든 삶은 그 안에 작은 의미가 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을 사랑한다. 나의 사랑하는 삶 안에서 산책하는 시간, 자연 안에서, 딸과의 쇼핑시간, 가족의 저녁시간, 향이 있는 시간, 사람들이 있는 시간 속에서 글감을 발견하고 글을 쓰는 시간을 사랑한다. 부족한 글이지만 나의 언어로 나를 표현하는 이 시간이 좋다.
금아 피천득 선생님은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라고 했지만, 난 아직 모든 것을 사랑하지는 못한다. 몇몇 사람은 끔찍이 사랑하지만,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는 못한다. 삶의 어떤 것은 사랑하지만 모든 것을 사랑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사랑하며 너그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
가족들과 파란 바다를 걸으며 웃고 싶다.
사진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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