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자

너와 내가 다시 묻는 질문들

by 영원


그날도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시장을 통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걸음이 빠른 나는 좁은 시장길의 사람들을 지뢰피하기처럼 '쏙쏙'피해서 빠르게 걷고 있었다. 앞을 보지만 곁눈으로 한 할머니가 바닥에 앉아 계신 걸 느낀 순간,



"나 택시 좀 불러줘요~"

할머니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걸음도 빠르고 이어폰도 끼고있던 나는 이미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 걸음은 앞으로 나가있었다.

순간, 나한테 말씀하신 건가?

앉아계신 거 보니 못 걸으시나?

이 복잡한 시장에서 부축을 하고 나가서 어떻게 택시를 불러 드리지?



순간적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몇 초만에 열 걸음은 앞으로 가있었다.

도와 드리려면 뒤로 돌아가야 했다.



난 처음 보는 사람과 얘기를 잘 나누는 편이 아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어떤 위험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감수한다는 전제가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나한테 한 말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향해 말씀하신 거겠지...

누군가가 도와주겠지.. 하는 스스로 합리화를 하며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기도를 했다. 나의 마음 편하려고 기도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 저는 용기 없는 자입니다. 돌아갈 용기가 없습니다. 할머니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집으로 무사히 가게 해주세요.. 다음에는 돌아갈 용기를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고 그 일은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 주 주일 설교에 목사님은 "성령의 열매:사랑"에 대해 설교하셨다.


설교를 들으며 '사랑'에 대해 묵상하고, 나는 삶속에서 사랑을 보이며 살고 있는지 생각했다. 그렇게 사랑에 대해 설교를 듣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순간,

며칠 전 시장에서 돕지 못한 할머니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날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던 내가 생각났다.



그날 난 용기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사랑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끄러웠다.



나이가 사십 대 후반이지만 아직도 배운다.

사랑이란 열 발자국 앞에 갔다가도 다시 돌아가는 마음이라는 것을..



다시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사랑 없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저에게 부어지고 흘러넘쳐 사랑을 흘려보내는 자가 되게 해 주세요.






우리는 각자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 '사랑하는 대상'하면 가장 먼저 가족이 생각나는 사람이 있고, 본인의 일, 어떤 사람은 물질과 명예를 사랑하기도 한다. 각자 '사랑이란?'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다르기도 하다.



난 사랑의 대상이 '가족'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사랑의 대상이 넓어져야 함을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서 가족에서 자연으로 사랑의 대상이 확장되었으나, 이웃에 대한 사랑은 확신할 수 없었다.



주위에 낮은 자, 어려운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볼 때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의 마음은 있지만 그들을 '사랑'했느냐? 하는 질문에는 선 듯 대답하지 못했다.



사랑 없음을 용기 없음으로 포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이 없다는 말보다는 용기 없다는 말이 좀 더 나를 대변하기에 그럴듯한 말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란 것은 나이가 들어가며 또 다른 대상으로 확장될 수 있다. 어디가 끝인지 모르게 깊어질 수 있다.

그만큼 사랑은 넓고 깊고 무한하다.







사진출처(chat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