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Preface. 거울

by 수내

꿈결이라 포장된다면 고마울 일이다.


이른 시절은 가히 중고로 점철되었다.

진심이 아니었으므로,

진심일 수가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저마다의 희망을 쏘아 올릴 때

나는 미지근한 불꽃놀이 하나둘 던져 올리는 데 그쳤다.

다 타버린 심지는 쓰레기통에 툭 던지면 그뿐이었고,

식은 불꽃의 잔해를 동태눈으로 주워 들던 나날이었다.

그날도 그런 하루였다.

의학의 경계 안으로 발을 들인 이후,

생경함과 현실과의 타협으로 승화한 시린 반흔때문일까?


이젠 나의 두 눈을 덮는 통통한 두덩이가 각각 중력을 따라, 중력에 반한 기이한 경사로 시려오는 액막을 업은 채로만 보게 되는 그 도서.


삶과 죽음이 매번 맞붙는 전장의 기록.

두터운 상처가 남긴 반흔을 닮은 둔턱한 책편 하나.

『골든아워 1』을 처음 펼쳤을 때의 내 심경은 아슬하게 서늘했다.

중증외상이 조명되기 전,

내가 흘겨본 의학계는 차분한 엘리트의 전선이었다.

경제적 가치를 떠나, 가늠조차 어려운 인간들의 순연한 몸짓.

익명의 개인적인 세상들을 향한 냉철한 발화점을 넘긴 성의였다.

그러나 책장을 덮을 즈음,

“경제적 가치를 떠나”라는 단 여덟 음절 앞에서

나 또한 끝끝내 자유롭지 못했다는 또 다른 깨달음과 마주해야 했다.

이제야 겨우 성장한 걸까?

아니면 나 역시 이 속박에 길든 걸까?

책의 앞장, 아우성치는 활자들 사이 고요한 한 장의 백지.

그리고 그 가운데 낯설게 적힌 다섯 글자,

‘정경원에게.’

그 짧은 헌사는 전우애로 읽혔다.

죽음의 경계를 앞에 두고 호흡조차 미루며 맞섰던 전우의 이름,

동시에 그것은 담긴 사회를 반하는 또 하나의 전선이었다.

나에게 책의 서문이란 그런 의미이자 충돌이다.

치열함으로 잉태한 감정의 고양, 그 글을 전하는 대상.

윤동주의 『서시』가 그러했고, 그 하늘은 여전히 내 시선에 겹쳐 있다.

이국종의 『골든아워』가 그러했고, 그 치열함은 적힌 글자에게 처절함을 묻혔다.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를, 어떤 동기를 품어야 하는가를 물었다.


찾을 순 있는가?

그 답을 찾았는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나는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가?

산란하는 생각을 얇게 도포해볼 수 있다면

관찰하고 당하기 쉽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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