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를 하기 위해선 무례한 사람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개념 없다", "싸가지 없다", "선 넘네."
우리 일상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쓰는 말이죠.
쓴소리를 덜 듣고 싶으세요? 사실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건 생각보다 간단해요. 좋은 일을 하려고 애쓰기보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행동만 안 하면 되거든요.
누군가의 마음에 들려면 꾸준히 관심을 보이고, 칭찬을 해주고, 그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꾸준히 탐색하고 그대로 해주면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들인다고 해도 내 행동을 싫어하는 사람은 꼭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상대방이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게 더 쉽고 빠른 방법입니다. 화가 많아 보이는 사람도, 그 사람이 정말 싫어하는 건 세 개쯤? 많아야 다섯 개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발작 버튼' 다섯 개 이상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주변 사람이 싫어할 만한 행동만 조심하면 충분히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어요. 생각보다 간단하죠?
근데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어요. 예쁜 짓을 많이 해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든, 싫은 짓을 안 해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든, 어쨌든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갖추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눈치를 본다, 안 본다"는 단순한 이분법이 아니라 얼마나 보느냐, 즉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는 뜻이에요. 눈치를 많이 보면 그만큼 다른 사람들한테 맞춰주게 되고, 반대로 눈치를 안 보면 오해를 살 가능성도 커지죠.
결국, 우리는 살면서 늘 선택을 해야 해요. 예상하든 못 하든, 욕먹을 위험을 감수하고 무언가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을 것인지 말이죠.
사실 이 선택은 매일 우리 앞에 놓여 있어요. 누군가를 도와줄 때도, 의견을 말할 때도, 심지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을 때조차.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직장에서 회사의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가정해 봅시다. 매일 마주하는 팀원 10명이 있다고 한다면, 이 아이디어를 싫어하는 사람은 최소 1명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 이유는 다양할 거예요.
"저 아이디어 때문에 내 자리가 위태로워질지도 몰라."
"일만 더 늘어나겠네. 짜증 나."
"지가 뭔데 일을 하라 마라 하지?"
"그냥 저 사람이 싫어서 뭐든 싫다."
100% 진심으로 모두를 위한 아이디어를 고안했다고 해도, 미움은 반드시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겐 이 아이디어가 무례하다고 느껴졌을 겁니다.
이 상황에서 선택은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겁니다.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아이디어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미움을 각오하고 내 생각을 표현할 것인가?
사고를 하기 위해선 무례한 사람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In order to think, you have to risk being offensive.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분명 위험이 따릅니다. 관계가 꼬일 수도 있고, 불편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죠. 그런데, 매번 그런 위험이 두려워서 내 생각을 말하지 못한다면요? 내 의견을 포기하고 침묵하는 게 정말 옳은 선택일까요?
결국 중요한 건 내가 무엇에 더 가치를 두느냐입니다. 주변의 기대에 맞춰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걸 우선시할 수도 있고, 누군가의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내 생각을 표현하는 걸 선택할 수도 있죠.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눈치를 보고,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내가 '유느님'처럼 안티 없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면, 이 노력은 나 자신과 사회 모두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타인과의 조화를 중시하며 사는 삶은 분명히 가치가 있어요.
하지만, 그런 욕망이 없다면 어떨까요? 좋은 사람이 되고자 주변의 기대에 맞추려는 노력은 오히려 나를 소모시키고 억압하는 역할을 하겠죠. 주변인의 기대에 맞추어 살기 위해선 나도 그 주변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점점 나답게 살아가는 삶에서 멀어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 사는 것도, 내 생각을 표현하며 사는 것도 각자 나름의 정답이 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그 선택이 내 욕망과 가치를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예요.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면, 그렇게 살아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때로는 "개념 없다"는 말을 들을 각오도 필요해요. 그런 용기가 결국 당신을 진정한 '나'로 살아가게 할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점이 하나 있어요. 나의 말이 무례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과,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할 의도로 말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전자는 내가 생각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반면, 후자는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려는 행동이죠. 이 둘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사고를 하기 위해선 남들에게 무례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 좋은 사고는 반드시 남들에게 무례를 끼친다는 뜻이 아닌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