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의 심리학: 중재자의 삶

by 황준선

가족이든 직장이든, 중재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어디서든 조용히 문제를 풀어가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면서도 크게 티 나지 않게 분위기를 맞추는 그런 사람들이요. 그들은 갈등을 싫어하고,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를 중재하면서 큰 무리 없이 일상을 살아가곤 해요.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고, 별 탈 없는 것 같죠.


근데 그런 역할에 익숙해진 사람들, 언젠가 한 번쯤은 이상한 공허함을 느끼게 돼요.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가 뭘 원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도 왠지 모르게 고립된 느낌이 들고, 늘 남들 의견에만 맞추다 보니 정작 자신의 생각은 어디 있는지 헷갈릴 때가 많아지죠.


이런 삶을 오래 살다 보면, 속에서 억울함과 분노가 조금씩 차오르기도 해요. “왜 나는 늘 참고 살아야 하지?” “내가 이렇게 애쓰는데 왜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요. 하지만 또 그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도 해요.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걸까?” 하고 말이죠.


근데, 이게 참 중요한 순간이에요. 그런 감정들이 결국 진짜 나를 마주하는 첫걸음이 되거든요. 그동안 갈등이 싫어서, 혹은 나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숨겨둔 감정들이 사실은 내 안에 그대로 있었던 거예요. 우리 모두 욕망이 있잖아요. 더 잘 살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고, 돈도 많이 벌어서 펑펑 써보고 싶고,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우아떨며 스테이크를 먹어보고 싶고, 욱하는 감정에 갑질을 해보고 싶기도 하죠. 내가 원하는 걸 이루고 싶어 하는 마음. 이런 마음을 느끼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래서 이걸 인정하고 나면, 작은 변화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직장에서 처음으로 내 의견을 솔직하게 말해본다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나도 이런 생각이 있어” 하고 표현해보는 거죠.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계속하다 보면 조금씩 자신감도 생기고,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게 그렇게 무서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돼요.


재밌는 건, 그렇게 솔직해져도 세상은 생각만큼 크게 변하지 않아요. 오히려 사람들이 “어? 이 사람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네?” 하고 놀라면서도 더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경우도 많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편안해지는 걸 느낄 거예요.


타인에게 맞추는 게 나쁜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게 전부가 되면, 진짜 나는 점점 희미해지거든요.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가 진짜 원하는 걸 인정하면서, 조금씩 내 목소리를 내보세요. 그게 바로 나답게 사는 삶의 시작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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