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의 심리학: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

by 황준선

오늘은 조금 독특한 영화 이야기를 들고 왔어요. 혹시 <아메리칸 사이코(American Psycho)>를 보신 적 있나요? 영화 제목만 들어도 무서운 이야기가 떠오르지만, 사실 이 영화는 단순히 잔인한 스릴러를 넘어서 우리 사회와 심리적 이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이에요.


영화 속 주인공은 우리에게 베트맨의 주인공으로 익숙한 크리스찬 베일입니다. 영화 속 그의 이름은 패트릭 베이트먼(Patrick Bateman)으로, 1980년대 뉴욕에서 잘 나가는 투자 회사 사장의 아들이자 본인도 하버드 출신으로서 금융업에 종사하며, 소위 말해 잘 나가는 '금수저'입니다. 그러나 겉모습 이면에는 극도로 불안정한 내면과 잔혹한 본성을 숨기고 있죠. 그런데 이 영화, 단순히 그의 폭력성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느낄 법한 눈치와 비교,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기는 시기심까지 건드리고 있어요.


우리 안의 작은 베이트먼을 떠올리며, 오늘은 눈치와 시기심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나보다 잘난 사람은 용서할 수 없어!

패트릭 베이트먼의 삶은 겉으로 보면 완벽 그 자체예요. 깔끔한 헤어스타일, 고급 향수, 명품 정장, 비싼 레스토랑을 드나드는 모습, 그리고 철저한 자기 관리로 만든 완벽한 몸매까지. 잘생긴 데다 성공한 커리어, 심지어 여자 모델의 마음을 단숨에 현혹하는 모습까지… 진짜 누가 봐도 부러울 수밖에 없는 사람이죠. 그런데 이 모든 게 정말 그의 진짜 모습일까요?


영화에서 유명한 장면 중 하나가 있어요. 베이트먼과 동료들이 명함을 비교하는 장면인데요. 각자 명함을 꺼내서 자랑하다가 베이트먼은 한 동료의 명함이 자기 것보다 더 고급스럽다는 걸 알게 돼요. 그 순간, 그의 표정이 싹 굳으면서 속으로 당혹감, 질투, 그리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게 눈에 보이죠. 하지만 그걸 애써 숨기려는 모습이 정말 적나라하게 드러나요.


이 장면 흥미로운 이유는, 주인공을 열받게 했던 명함의 차이가 사실은 너무 미세해서 일반 사람이 구분하기 힘들 수준이라는 거예요. 그런데도 이 장면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도 살면서 비슷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차마 결제하지 못한 명품을 누군가 입고 나타났거나, 간절히 원했지만 합격에 실패한 직장에 친구가 쉽게 이직했다거나 등. 내가 갖지 못한 무언가를 당연한 듯 누리는 사람을 보며 "왜 난 저렇지 못할까?" 하고 속으로 씁쓸했던 순간들… 한 번쯤은 다 있었잖아요?

American-Psycho.jpg 누구의 명함이 더 멋진가를 비교하는 장면

보여주기 위해 사는 삶과 사회

사실, 베이트먼이 이렇게까지 자기 이미지에 집착했던 이유는 그가 살던 1980년대 뉴욕의 사회적 배경과 맞닿아 있어요. 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미국은 지금의 북유럽처럼 부자들에게 상당한 세금을 부과하던 시절이었죠.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성공'과 '자유'라는 키워드가 점차 부각되기 시작했고, 재산과 돈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사회로 변해갔어요. 물질적 성공과 외적인 이미지가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 사회에서, 베이트먼은 그 흐름에 충실히 따랐던 겁니다. 명함 하나, 식당 예약 하나까지 자신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는 그런 세상이었으니까요.


예를 들어, 고급 레스토랑에 가는 이유도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약이 어려운 식당에 한 통의 전화로 자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거였죠. 마치 요즘, 전화 한 통으로 인기 요리사의 레스토랑에 저녁 자리를 예약할 수 있다고 하면, 사람들에게 "와, 대단하다!"라는 칭찬을 듣는 것처럼요.


사실 우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살고 있어요. 인스타그램만 켜도 누군가는 새 차를 자랑하고, 누군가는 해외여행 중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멋진 커리어를 쌓아가는 모습이 넘쳐납니다. 처음에는 "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긍정적인 자극을 받을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근데 왜 나는 저만큼 못하지?"라는 비교의 늪에 빠져들기 쉬워요.


그렇게 주변을 의식하며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나만 뒤처진 것 같고,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불안감이 점점 커지죠.


눈치는 과도하면 시기심으로 번져

눈치와 비교가 지나치면 시기심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아참! 그전에 먼저 부러움과 시기심을 구분해 볼까요? 부러움은 "쟤는 돈이 많아서 참 좋겠다~"라는 마음이에요. 반면에 시기심은 "돈이 많으니 불행했으면 좋겠다"거나, "저 돈 내가 빼앗고 싶다"라는 마음에 가깝습니다.


부러움은 우리를 발전하게 하는 긍정적인 동기가 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친구가 코인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도 경제 공부를 해서 수익을 내봐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죠. 이런 부러움은 우리가 더 나아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부러움을 느끼려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이나 그들의 성취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관심이 지나쳐 "나는 왜 저 사람만큼 못하지? 내가 뭔가 잘못된 걸까?"라는 생각으로 흐른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이때 시기심은 나를 갉아먹는 감정으로 변하고, 나아가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는 파괴적인 마음에 이르게 되면 정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감정의 차이는 미묘하지만, 그 결과는 크게 다를 수 있어요. 부러움은 성장으로, 시기심은 상처로 이어지니까요.


실패하면 시기, 성공하면 발전 아닙니까?

우리 마음속에는 잘 나가던 사람이 추락하는 모습을 보며 은근히 쾌감을 느끼는 감정이 크든 작든 자리 잡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힘도 일종의 '힘'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이런 감정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전환해 내가 가진 눈치를 멋지게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내가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하려는 성향이 있는지 스스로 파악해 보세요. 이를 깨닫게 되면 눈치로 인한 스트레스가 훨씬 줄어들 수 있습니다. "나는 원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니까 그런 거야" 혹은 "나는 눈치를 덜 보는 타입이니까 괜찮아"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니까요. 다만, 내가 눈치를 많이 본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눈치를 강요하거나, 내가 눈치를 덜 본다고 해서 눈치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여기는지는 말아야 합니다.


둘째, 안정성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마세요.

인간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고민이 멈추는 순간은 죽음 이외에 존재하지 않습니다(잔인한 멘트라고 해서 코리안 사이코라고 부르진 말아 주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안정적인 직장, 안정적인 배우자, 안정적인 가정을 갈구하곤 하죠. 이렇게 '안정'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반드시 불안정해집니다. 그런 심리 상태에 빠지면 세상의 모든 것에 불만이 생기고, 주변 사람들까지도 내게 불행을 가져다주는 나쁜 존재처럼 보이기 쉬워요. 이 상태에서는 작은 자극에도 시기심과 분노가 폭발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의 작은 베이트먼

패트릭 베이트먼은 자신의 삶도, 아니 자신조차도 잃어버린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말 그대로 Selfless 한 상황에 빠지게 되고,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죠. 영화처럼 극단적인 모습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타인의 기대와 비교 속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가고 있어요. 주변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 중요한 것은 이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입니다.


눈치가 나를 이해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지, 아니면 나를 갉아먹는 시기심이 될지는 오직 내 선택에 달려 있어요.

그러니 주변을 의식하되, 자신만의 눈치 정도를 세워서 매일 실천하려고 노력해 보세요. 눈치 안 본다고 다 좋은 게 아니고, 본다고 다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러면 오늘도 내 기준으로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삶을 살아가길 응원합니다!

keyword
이전 09화눈치의 심리학: 명언 <조던 피터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