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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많이 먹는데, 왜 더 많은 사람이 죽어요?

by 황준선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왜 성적이 안 오르죠?"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잘 모르는 사이라면 힘내라는 말로 위로하겠죠. 하지만 가까운 사이라면 아마도 "공부 방법이 잘못된 것 같아"라고 조언할 겁니다.


그런데 이 말을 조금 더 무섭게 표현해 볼까요?

"제가 얼마나 사랑해 주는데, 상대방은 왜 살려달라며 울어요...?"

섬뜩한 기분이 들지 않나요?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상대방에게는 고통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게 공포로 느껴지기 때문이죠.


저 또한 정신과 약물 처방을 보며 이런 무서움과 경각심을 느낍니다.


정신과 약 처방은 늘어나지만, 자살률은 줄어들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정신과 약물 처방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항우울제 처방 건수는 2017년 약 2,200만 건에서 2022년 3,300만 건으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항불안제와 수면제를 포함한 처방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어린 학생들이나 중장년층을 가리지 않고 처방을 받는 사람의 범위 또한 매우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신과 약물이 널리 사용됨에 따라 사람들이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여전히 OECD 1위입니다. 2022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6.0명으로, 약물 치료의 증가가 자살 예방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호소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약을 많이 먹는데, 왜 더 많은 사람이 죽을까?",

"과연 더 많은 약을 더 꾸준하게 먹는 것만이 답일까?"


약을 먹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

앞서 공부의 예시를 다시 떠올려볼까요?
"공부를 많이 하는데도 성적이 안 오른다"면, 우리는 공부 방법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의심합니다.
심지어 공부 시간을 늘렸는데, 성적이 더 떨어진다면 그 공부 방법엔 확실히 문제가 있는 거겠죠.


정신과 약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원을 더 자주 방문하고, 더 다양한 약을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문제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음을 의심해야 합니다.


"이 약이 정말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가?"


물론, 정신과 약물이 분명한 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주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일시적인 약물의 개입이 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정신적 고통이 약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물론... 내가 처한 막막함과 힘듦이 '문제'가 아니라 '병'이라고 생각하면 잠시 마음은 편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만, 병은 예기치 않게 닥친 불행으로 느껴지니까요.
그래서 불행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약물 처방에만 의존하면, 근본적인 원인을 외면한 채 증상만 억누르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진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정신과 약물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정신 건강 문제는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약물을 처방받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내 삶에서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약물은 하나의 도구일 뿐, 완전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인터넷 강의를 많이 본다고 해서 서울대에 갈 수 없는 것처럼요.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데, 상대방은 왜 살려달라며 울어요?"
이 문장이 우리를 소름 끼치게 만드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의지한다고 해서, 그 방법이 반드시 옳다는 법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인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20대의 젊은 여배우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서 없이 떠났다는 것은 그만큼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음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약물, 음주, 혹은 둘 다가 영향을 미쳤고, 특정한 시간과 장소, 순간의 모든 정황이 겹쳐 발생한 일이겠지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약물은 마약이 아니라 정신과 약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녀는 우울증 약의 흔한 부작용 중 하나가 자살 충동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사람들은 이번 일에 대해 악플러를 처벌해야 한다거나, 생활고 등의 이유를 거론할 겁니다. 아마도 3~5일이 지나면 이 소식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며 남의 이야기처럼 잊히겠지요.


고인에 대한 추측을 늘어놓으며 이를 콘텐츠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약물 복용을 시작한 뒤 생을 마감하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무거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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