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도 뇌도 같지만, 우리가 같은 사람일까?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의 신작으로, 우주 이민선의 소모품 요원인 미키 반스의 이야기를 그린다. 미키는 죽을 때마다 기억을 유지한 채 새로운 육체로 재생되며, 이번에는 17번째 생을 살고 있다. 그는 얼음 행성을 인간이 거주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임무 중 발생한 사고로 인해 자신이 죽었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미키가 생성되면서 두 미키가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이는 우주 이민선의 규칙에 어긋나는 상황으로, 두 미키는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만약 내 몸, 얼굴, 머리카락 한 올까지 완벽하게 똑같은 내가 눈앞에 나타난다면 어떨까? 심지어 기억도 같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악, 그리고 뇌 구조까지 모두 동일하다면?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다. 그 '또 다른 나'와 대화를 나눠보니 성격이 다르다.
이건 무슨 뜻일까? 모든 유전자가 동일한데도 성격이 다를 수 있다는 거다. 즉, '나'를 결정하는 건 단순히 유전자나 뇌의 구조가 아니라는 뜻이다. 성격은 단순히 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경험, 환경,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쌍둥이조차 성격이 다르게 형성되는 걸 보면, 성격이 유전적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나와 똑같은 존재가 있다 해도 우리는 서로를 ‘너’와 ‘나’로 구분한다. 결국, 내가 누구인지는 유전자나 뇌가 아닌, 나만의 사고방식, 감정의 흐름 같은 것들로 정의된다는 거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100% 똑같은 내가 눈앞에 나타난다면, 내가 그 자리에서 사라져도 괜찮을까? ‘어차피 나랑 똑같으니까, 난 없어져도 상관없겠지’라고 생각하는가? 아마 대부분은 ‘아니, 그래도 난 죽고 싶지 않아!’라고 할 거다. 그렇다면 이거야말로 결정적인 증거다. '나'라는 존재는 단순한 유전자 조합이나 뇌 구조가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라는 것.
그런데 우리는 이 중요한 사실을 자주 잊는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란, ‘나’라는 존재가 단순히 유전자나 뇌 구조로 환원될 수 없으며, 성격이란 그 자체로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내 성격에 문제가 있어’라고 생각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뇌의 호르몬을 조절하는 약을 찾거나, 억지로 나를 바꾸려 한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접근이다. 애초에 성격은 '좋다' 혹은 '나쁘다'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다. 성격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느끼는 감정, 행동, 그리고 생각의 총합이다. 문제는 성격 자체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에 있다.
내가 내 성격을 이해하지 못할 때,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은 이를 단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감정이 풍부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강점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쉽게 불안, 걱정을 뇌의 문제로 돌리지만, 진짜 해결책은 뇌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 옳은지 판단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약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이해다.
아직도 뇌를 바꾸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래, 그렇다고 치자. 당신이 뇌를 고쳐서 감정이나 성격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나와 100% 유전자와 뇌가 똑같은 인간을 만들고, 그 대신 내가 문제라고 여겼던 뇌의 일부만 깔끔하게 수정한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복제물은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된다.’ 그렇다면, 나는 그 복제물을 대체하기 위해, 더 완벽한 나로 살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서 사라져도 괜찮을까?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라는 존재가 단순한 유전자나 뇌 구조의 조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성격을 문제라고 규정하고 뇌를 조작하려는 시도는 ‘나’라는 존재를 기계적 구조로 축소하는 오류를 범하는 셈이다.
그러니 성격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성격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의미 있는 해결책이 된다. 성격을 이해하는 법은 간단하다. 먼저, 나의 성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 보면 된다. 예를 들어, 꼼꼼한 성격이라면 완벽주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철저히 세워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
'나를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라는 점에서 영화 미키 17은 흥미로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에서 17명 이상의 '미키'가 존재했지만, 이는 미키가 17번 연속해서 살아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키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17명의 개별적인 존재가 탄생하고 죽은 것이다. 단지, 그 탄생과 죽음의 기억이 연속성을 갖고 공유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기억의 연속성이 '나'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일까? 아니면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주체성이 더 중요한가?
철학자 존 로크는 ‘자아란 기억의 연속성 속에 존재한다’고 주장했지만, 니체는 ‘인간은 자신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존재’라고 말했다. 결국, 우리는 단순한 기억의 집합체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며 형성되는 관계 속에서 나를 정의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기억을 공유하는 또 다른 ‘나’가 존재한다면, 그는 정말 나일까? 아니면 나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개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