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 너무 어려운데요
우리는 늘 고민 속에 산다.
"이직을 해야 할까?",
"이 관계를 이어가야 할까?",
"내 삶은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끝없이 흘러나오는 질문들은 마치 인간의 본능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깊게 고민하면서도 정작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다.
아니, 때로는 노력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로 가벼운 몸짓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고민했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오히려 고민의 무게에 짓눌려 움직이지 못한 채 주저앉는다.
이 글은 이 궁금증으로 시작한다.
고민은 늘 진짜와 가짜 사이에 서 있다.
진짜 고민은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때로는 작은 발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나 가짜 고민은 스스로에게서 에너지를 뺏어갈 뿐,
어떤 방향도 제시하지 못한다.
문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간이 바로
이 애매한 '가짜 고민' 속에서 흘러간다는 것이다.
가짜 고민은 달콤하다.
실제로 행동할 필요도 없고,
실패할 위험도 없으며,
그럼에도 '나는 진지하게 삶을 고찰하는 사람'이라는 착각을 준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마치 제자리걸음과 같다.
에너지는 소모되지만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노력'이다.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일들 가운데,
과연 얼마나 진짜 노력일까?
공부를 한다고 책상에 앉아도 머릿속은 온통 다른 생각이라면,
새벽 헬스장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오는 것이라면,
이것을 정말 '노력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종종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만 몰두한다.
실제로 문제를 뚫고 나가기 위한 진짜 시도는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노력의 포장지는 반짝이지만,
그 안에는 공허함만 들어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왜 사람들은 고민만 하고, 노력은 하지 않을까?
그 질문 자체가 나의 고민이 되었다.
아이러니하다.
나는 지금 고민하지만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을 두고
또다시 고민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고민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이 글을 쓰는 행위가 진짜 노력일까,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자기기만일까?
여기서부터 이 글을 왜 쓰는지 원점으로 돌아가버렸다.
인간에게 고민은 삶을 의심하게 만드는 힘이고,
노력은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인간은 자신의 가짜 고민을 진짜 고민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진짜 고민을 진짜로 받아들이는 사람,
심지어 진짜 고민을 가짜라고 의심하며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다.
노력 또한 마찬가지다.
가짜 노력을 진짜 노력이라고 믿는 사람,
진짜 노력을 진짜로 인식하며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진짜 노력마저도 가짜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이렇게 다양한 고민의 형태가 다양한 노력의 형태와 만나기도 하고
만나지 않기도 한다.
가짜 고민과 가짜 노력
진짜 고민과 가짜 노력
가짜 고민과 진짜 노력
무수한 경우의 수가 각기 다른 인간을 만들어낸다.
사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가짜 고민도 진짜 고민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면 잘못이 아니다.
진짜 고민에 가짜 노력이 뒤따르는 것도 필요한 시행착오일 수 있다.
가짜 고민도 진짜 노력으로 해결되기도 하니 의미가 있고,
진짜 고민과 진짜 노력의 조합은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다.
결국 진짜든 가짜든 제각기 의미가 있다.
가짜라고 해서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인간이 살아가면서 거치는 자연스러운 과정들이고,
각각이 나름의 역할을 한다.
심지어 가짜 고민은 진짜 고민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고,
가짜 노력은 진짜 노력의 예행연습이 될 수 있다.
고민과 노력에 대해 복잡하게도 썼지만,
대다수가 겪는 이 사고의 끝은 비슷한 곳으로 향한다.
바로 고민이 없는 상태이자,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이다.
"고민 없이 사는 사람도 있을까?"
"이제 이런 노력도 버겁다..."
고민과 노력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목표를 설정하는 순간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가치는 전부 사라진다.
고민과 노력이 없는 상태를 설정하는 것부터가 모든 것을 잘못되게 만든다.
그 순간 가짜 고민은 더 이상 진짜 고민으로 가는 과정이 아니라
단순한 시간 낭비가 되고,
가짜 노력은 시행착오가 아니라 의미 없는 몸부림이 되며,
진짜 고민과 진짜 노력마저도 결국 자기 자신을 부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이것은 마치 '내가 없는 나의 삶'을 목표로 하는 삶과 같다.
살기 위해 하는 모든 행위가 결국 죽음을 향해 있다면,
그 모든 행위는 허무해진다.
음식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심지어 행복해하는 것조차도 모두 무의미해진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목표를 당연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스트레스 없는 삶", "고민 없는 하루",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이런 말들이 마치 인생의 최고 가치인 양 포장되어 있다.
하지만 고민과 노력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적 활동이 아닐까?
그것들을 소거하려는 목표 자체가 인간성을 소거하려는 시도는 아닐까?
목표를 이렇게 설정하는 순간,
모든 고민은 더욱더 가짜가 되고 진짜도 가짜가 되며,
노력도 가짜가 되고 진짜 노력마저 가짜 노력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의 종착점이 그 모든 것의 부재이기 때문이다.
고민 없는 인간은 공허하고,
노력 없는 인간은 무력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고민과 노력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마지막 그 순간까지 고민과 노력을 잃지 않으려는 것부터 설정하면
의외로 모든 것이 단순하고 명확해진다.
삶이 피아노 연주라면,
마지막까지 내 손으로 건반을 눌러 마지막 악장을 덮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작은 불협화음은 재즈가 되고
가짜 고민으로 인한 탈선은 변주가 된다.
진짜 고민과 진짜 노력이 만나 클라이맥스에 치닫기도 하고,
내 멋대로 쉼표를 길게 눌러도 상관없다.
열심히 하다 보면 더 어떤 음표를 채워 넣느라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연주하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만 버린다면,
내가 눌러 마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사실은 아무거나 눌러도 그건 다 그 작품의 일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