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보다 중요한 '정리 작업'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출석률도 낮았고 성적도 좋지 않았어요. 눈에 보이는 부위에 문신도 여러 개 있고요. 고등학교는 겨우 졸업했고, 군대 다녀와서는 아르바이트만 간간이 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창업을 하게 됐습니다. 술도 같이 파는 베이커리 겸 카페였어요.
처음에는 열정적으로 시작했고, 5년 동안 정말 쉴 틈 없이 일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직장인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주말에 쉬고, 명절에도 쉬고, 심지어 동료들과 오후에 커피 한 잔 마시러 여유롭게 나오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마음이 떠나니까 가게에 나가는 것 자체가 점점 고통스러워져서 결국 이번에 정리를 하게 됐습니다.
이제 취업을 해야 하는데, 컴퓨터 활용이나 엑셀 같은 기본적인 것조차 할 줄 아는 게 없는 제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합니다.
프랜차이즈 본사 슈퍼바이저 같은 직무가 눈에 들어왔어요. 가맹점 관리하고 매출 관리해 주고 메뉴 개발하는 업무라고 나와 있던데, 제 경험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가더라고요.
근데 뭘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대기업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중소기업도 괜찮아요. 컴퓨터 학원도 가야 할 것 같은데 뭘 배워야 하는지, 사이버 대학은 가야 되는지 등등 조언 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사연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업하면서 수익이 어느 정도 발생했었나요?"
이 질문이 왜 중요한지 설명해 드릴게요.
사연자가 가게를 접게 된 명확한 이유를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었어요.
과연 회사원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고 계셨어도 가게를 접으셨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사연 내용으로 짐작하건대, 아마 서른 초중반쯤 되실 것 같았어요.
국세청 정보에 의하면 33세의 평균 연봉은 약 4,300만 원입니다.
통장에 찍히는 월급으로 치면 300만 원 정도죠.
만약 사연자가 사업해서 버는 돈이 월 300만 원보다 훨씬 높았어도
그 사업을 그만두셨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셨으면 했어요.
회사원을 목표로 하시든, 또 다른 창업을 하시든
그건 지금 당장 중요한 게 아니에요.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거든요.
인생에서 한 단계를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리 작업'이에요.
"사업을 해보니 어떠한 문제가 있었고, 배운 점은 무엇이 있었으며,
그 과정과 결과는 나에게 무엇이었다"라고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는 작업 말이죠.
그리고 그게 나 스스로 납득이 가능한지,
또는 주변 사람에게도 설득력이 있는 문장인지 확인해봐야 해요.
적어도 저에게는 '직장인들이 오후에 커피 마시러 오는 게 부러워서 그만뒀다'라는 건
충분한 이유도 아닐뿐더러 납득할 만한 요소도 아니었거든요.
물론 그게 표면적인 감정일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분명히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거예요.
군 전역 후 열정적으로 시작해서 이른 나이에 베이커리 카페를 창업한 건,
날고 기는 대기업 사원들도 못 하는 아주 탁월한 능력이에요.
귀찮아서 생략하신 건지 모르겠지만,
그 처음과 끝 사이의 빈칸에 많은 물음표가 생겼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의 열정은 분명했을 거예요.
그런데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언제부터 마음이 떠났고, 어떤 계기로 초심을 잃었던 걸까요?
수익이 문제였을까요, 아니면 일 자체가 지겨워졌던 걸까요?
혼자 일하는 게 외로웠던 걸까요, 아니면 성장하는 느낌이 없어서였을까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지 않고
단지 "취업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으로 넘어가면,
결국 똑같은 패턴이 반복될 수밖에 없어요.
회사에 들어가서도 언젠가 비슷한 이유로 회의감을 느끼고 그만두게 될 가능성이 높거든요.
만약 제가 드린 정리 작업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아르바이트 시절의 열정은 나에게 무엇이었고,
나는 어디서부터 언제 어떤 계기로 초심을 잃었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찾아보시라 권유했습니다.
컴퓨터 학원을 가야 하는지, 사이버 대학을 가야 하는지 같은 질문들은 그다음이에요.
정리 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기술을 배우고 스펙을 쌓는 건 방향 없이 달리는 것과 같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