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 나의 역할을 찾는다는 것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고2입니다. 저희 가정은 편부 가정으로 아버지 혼자 저희 세 남매를 키우고 계십니다. 오빠는 성인이 되어 군대를 전역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제 남동생은 중1입니다.
문제는 남동생인데요, 계속해서 학교에 지각하고 이걸로 몇 번 지적하고 타일렀는데 별로 나아지는 게 없더라고요. 말썽을 크게 부리는 스타일은 아닌데, 예전에 몇 번 같은 반 애들이 괴롭힌 적이 있어서 제가 나서서 도와준 적이 있었어요.
남동생한테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봐도 없다고 하고, 공부도 또래에 비해 뒤처진 수준이라 동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학교에 한 시간 늦게 등교했고, 하고 싶은 거 있냐고 진지하게 물어봐도 없다고만 하고요. 제가 혼낼 때마다 계속 움츠러들고 소극적으로 반응하는 모습도 너무 답답해요. 가끔씩 관심을 끌려고 이상한 행동을 할 때마다 속상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 사연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동생을 걱정하는 마음이 정말 훌륭하다는 것이었어요.
편부 가정에서 누나로서 동생을 챙기려는 모습이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럽게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동시에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보였습니다.
사연자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역할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이런 질문부터 드리고 싶었어요.
"아버지께서 혼자 세 남매를 키우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답은 간단해요.
아버지께서 혼자 세 남매를 키우고 있다는 말 그대로의 의미일 뿐이에요.
사연자가 엄마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거든요.
이 지점이 정말 중요해요.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있어요.
엄마 아빠가 한 명씩 있는 집도 있고, 새엄마나 새아빠와 함께하는 집도 있죠.
때로는 부모님 두 분 다 안 계신 집도 있고, 반대로 부부만 있고 자녀가 없는 집도 있어요.
각자의 상황에 따라 그렇게 살아갈 뿐이에요.
우리 같은 어른들도 마찬가지죠.
직장에 가면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동료가 있고, 조용한 동료가 있잖아요.
점심 식사에 진심인 동료가 있는 반면 운동이나 낮잠으로 보내는 동료가 있죠,
매주 소개팅을 하는 동료가 있고, 혼술을 좋아하는 동료도 있을 거예요.
이 중에서 '평범한 직장인'은 누구일까요?
그런 건 없어요.
각자 다른 모습으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뿐이에요.
이 학생의 가정환경도 마찬가지예요.
평범한 가정 같은 건 없어요.
그저 각자의 형태로 존재할 뿐이죠.
이 말을 건넨 이유는 사연자가 엄마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는 걸 파악했기 때문이에요.
아버지가 혼자 세 남매를 키우기 때문에
그중 누군가가 반드시 엄마 역할을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중학교 1학년 동생에게 지금 필요한 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어요.
엄마의 존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학교나 학원에서 남모를 상황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요.
심리상담사는 그 동생에게 초점을 맞추는 실수를 범해선 안 됩니다.
핵심은 사연 속 학생이 엄마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믿음이거든요.
지금 하는 고민이 엄마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됐음을 이해시켜야 해요.
그리고 사연자 자신의 삶을 사는 게 먼저임을 알려주어야 하죠.
그게 오히려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오빠에게 가장 필요한 모습이에요.
본인 스스로에게도 가장 필요한 태도이고요.
물론 동생이 지각하고, 공부가 뒤처지고, 위축되어 있는 모습이 걱정될 순 있을 거예요.
사연자의 심성이 참 착하죠?
하지만 그건 사연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에요.
그건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필요하다면 학교 담임 선생님이나 상담 선생님이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예요.
사연자가 할 수 있는 건 형제로서 존재해 주는 것이면 충분해요.
지금은 고2 자신의 삶에 집중할 때죠.
공부든, 친구 관계든, 진로 고민이든, 사연자가 건강하고 단단하게 성장하는 것.
그 모습이 동생에게도 가장 좋은 본보기가 될 거고, 가정에도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