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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잃고 무기력해진 그녀의 사연

by 황준선

그녀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초반의 여성입니다.

어릴 적 제 꿈은 피아니스트였던 것 같습니다. 우연히 접한 피아노에 흥미를 느껴 초등학교 때는 집에 있는 전자 키보드로 좋아하는 곡도 쳐보고, 어머니와 함께 연주회에도 가보고, 학교 축제에서 반주도 해보면서 그렇게 꿈을 가지고 살아왔던 것 같아요.


문제는 중학교 때였습니다. 저는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어요. 흔히 말하는 학교 폭력이죠. 뒤에서 흉보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친하게 지내려고 다가갔다가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부모님 도움으로 어찌어찌 견뎌냈지만, 제가 잡은 건 공부도 피아노도 아닌 인터넷이었습니다.


그렇게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실상 피아니스트라는 꿈보다는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까?'라는 주제로만 매번 되새기고 있지만, 막상 해보고 싶다 하는 일도 잘 안 잡히고 공부도 잘 안되고 괜히 늦은 것 같아 후회되고 부모님 뵐 면목이 없습니다.


어느 순간 우울증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우울하다 못해 무기력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하루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거의 그렇게 보내다가 이제 무언가를 해보려 하는데, 막상 또 잡으려니 집중이 안 되고 미치겠습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tempImageKvcQT0.heic 출처: unsplash

심리학자의 답변

이 사연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사연자가 너무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이었어요.

그러면 사람은 무기력해져요.


12년을 이렇게 보냈든 저렇게 보냈든,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긴 시간이에요.


12년의 공백을 12일 만에 채울 수는 없어요.

그 누구도요.

이게 가장 중요한 전제예요.


저는 이런 비유를 떠올렸어요.

12년 동안 가만히 세워둔 자동차를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비게이션을 어떻게 켜고, 액셀을 밟고 그런 게 중요할까요?

아니겠죠


시동을 걸 수 있는 컨디션부터 만드는 게 먼저입니다.

엔진 오일도 확인해야 하고, 배터리도 점검해야 하고, 타이어 공기압도 체크해야 해요.

시동을 걸어 어딘가로 향하는 건 그다음 문제입니다.


그러니 사연자는 현재 진로 고민을 할 때가 아니에요.

'취미', '흥미', '집중', '일' 같은 키워드도 신경 쓸 때가 아니고요.


당장 밤낮부터 바로잡아야 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식사하시고 씻고 밖으로 나가는 거죠.

어디든 좋으니 가보시고, 걸어보시고, 세상이 주는 자극을 느껴보세요.


점심 드시고 오후에는 또 어딘가를 돌아다녀 보시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저녁밥 드시고요.

그리고 쉬다가 밤에는 자고,

다시 아침에 일어나 반복하는 겁니다.

다른 생각하지 않고 이것만 50일 동안 반복하는 겁니다.

tempImagey4LjNu.heic 출처: unsplash

왜 이렇게 말씀드렸냐면,

지금 사연자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목표나 진로가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일상의 회복이거든요.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자는 것,

밥을 먹는 것,

밖으로 나가는 것.


이런 것들이 습관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는 건 순서가 맞지 않아요.


이게 가능해지면,

집 앞 가까운 곳 편의점 아르바이트부터 취직을 시도하면 됩니다.

고작 파트타임?

얼핏 들으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겠지만,

집 안에 있는 세월이 길었던 사람에게는 아르바이트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기력과 우울 속에서 지내온 사람이

갑자기 "이제 뭔가 해야지"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눈이 번쩍! 뜨이고, 집중력이 생기고, 동기부여가 될 순 없어요.

그런 기대를 하면,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향한 죄책감과 더 큰 무기력만 남을 뿐일 거예요.

그러니 먼저 기본적인 리듬을 회복해야 해요.

이 작은 변화조차도 포기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스스로를 한 번 시험해 보시라 조언했습니다.


이 루틴을 만들고 지켰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어요.

그때 가서 진로나 일, 흥미 같은 것들을 천천히 찾아가면 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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