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은
법정에 들어서기 전
사건 기록을 다시 펼쳐보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고,
중요한 건
무슨 일이 있었는가가 아니라
왜 그런 일이 있었는가였기 때문이다.
법정은 조용했다.
이곳에서는
사실보다 이유가 먼저였다.
그 자리에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생이 앉아 있었다.
그는 ‘피해자’라는 명칭으로 불렸지만,
단어를 스스로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판사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해자는 소년이었다.
의자에 깊게 기대앉아 있었지만
표정은 가볍지 않았다.
긴장한 얼굴도,
반성하는 얼굴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설명해야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판사가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시, 그 돈이 왜 필요했습니까?”
소년은 잠시 침을 삼켰다.
“필요해서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세요.”
소년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집에… 돈이 없었습니다.”
방청석의 사람들은 아무도 숨을 들이마시지 않았다.
이 법정에서 이 말은
놀라운 고백이 아니었다.
판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자주 그런 상황을 겪었습니까?”
“자주요.”
소년이 말했다.
“거의 항상요.”
판사는 소년의 기록을 넘기며 물었다.
“부모는 안정적인 소득이 있습니까?”
“아니요.”
“지원 제도는 신청해 보았습니까?”
“했는데… 기다리라고만 했습니다.”
판사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는 천천히 말했다.
“당신은 선택지가 많지 않았군요.”
소년은 그 말에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판사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보지 않았다.
그가 잃은 돈이 얼마인지도,
그날 얼마나 억울했는지도
묻지 않았다.
대신 소년에게 다시 물었다.
“당시 누군가를 해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까?”
“아니요.”
“복수나 분노였습니까?”
“아니요.”
“그럼 그 행동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소년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네.”
법정은 그 대답을 충분히 받아들였다.
하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피해자를 변호하고 있었지만,
가해자의 무고를 주장하기 위해 그곳에 있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는 말했다.
“이 사건은 도난이 아니라
사회적 선택지의 결핍에 대한 기록입니다.”
판사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판사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이 상황을 어떻게 인식했습니까?”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돈을 도둑맞았는데, 인식하고 말게 어딨 죠?
전 아무 죄도 없이 피해를 당해 억울할 뿐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 법정의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식었다.
판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얼마 전 식당에서 결제를 하지 않고 달아난 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있던데,
그때도 똑같이 억울하다는 표현을 쓰셨네요?”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판사는 서류를 정리하며 말했다.
“이 법정은 개인의 손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도난당한 돈은 판결이 끝나는 즉시 보상될 것입니다”
판사는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 손실을 ‘부당함’으로 규정하는 순간,
사회는 원인을 탐색할 기회를 잃습니다.”
"나는 잘잘못을 판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가장 최선의 조치를 취해주는 사람일 뿐이죠."
판결문은 조용히 읽혔다.
소년:
- 사회적 취약성에 대한 기록 인정
- 위험 감수 행동에 대한 보호 관찰
- 사회 적응 지원 프로그램 연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 억울함을 해소하려 소송에 참여한 책임
- 정서 인식 조정 교육
- 사회 구조 이해 프로그램 의무 이수
집으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 안,
하민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아주 낮게 혼잣말을 했다.
“도대체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거지..."
그 질문은
학교에서,
교실에서,
시험지 위에서
흘러나오던 질문과
같은 결을 가지고 있었다.
이 법정은 사람을 처벌하는 곳이 아니라,
사연을 재분배하는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