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은 광대를 바라보는 대중의 심리
춤추고 노래하는 재롱 잔치로 돈을 버는 광대가
나보다 돈이 많다는 건 배가 아프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연예인을 '공인'이라 칭하기 시작했다.
공인이란,
말 그대로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다.
쉽게 말해,
세금이 곧 월급인 사람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어쩌면 철저히 자본주의의 수혜를 입는
연예인을 공인 취급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가진 힘과
그런 힘을 가진 광대를 바라보는 대중이 만들어 낸
모순적인 태도 때문이다.
과거의 판소리와 창이 현대 사회에서는 가요이자 힙합이다.
과거의 희극과 가면극이 현대 사회에서는 연기이고 예능이다.
다른 점이라면
과거에 광대는 천민이었지만
현대에 연예인 부유층이라는 것이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한국에서
땀을 뻘뻘 흘릴 만큼
그 복통이 극대화되는 경우는
그 사돈이 내가 평소에 깔보던 존재였을 때이다.
즉, 천민이었던 연예인이
돈을 많이 벌고 호화스러운 삶을 사는 것은
우리에겐 너무 배가 아픈 일이다.
마치 카스트 계급 상위층이
사업으로 성공한 하층 계급을 바라보는 상황과도 비슷하다.
이런 얄미운 상황에서
우리가 취한 조치는
'공인'이라는 올가미를 씌우는 것이다.
연예인은 광대이나
그들이 돈이 많은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상류층의 품위 유지를 강요한다.
나는 광대보다 계급이 높은 평민이니
광대에게 그런 의무를 부여할 권한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재미있는 역설이 펼쳐진다.
진짜 공인은 연예인이 되고,
연예인이 공인이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국무 위원이 되겠다는 사람이
인사청문회에 나와서
코인이나 탈세 같은 각종 의혹과 질타를 받아도
우리는 마치 연예인의 연기를 보듯
그 장면을 넘긴다.
정치인이 시장에 방문해서
어묵과 떡볶이를 먹고
"민생을 최우선하는 후보가 되겠습니다!"라고 외친다.
그런 그들이 자녀의 마약 문제나
입시비리 의혹으로 좌천되어도
우리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고 난 듯한 반응을 보인다.
반대로
연예인이 암호화폐로 재산을 은닉하여
탈세를 저지르거나
학력 위조를 한 사실을 들키면
매우 엄격하고 공정한 공인의 잣대를 마주하게 된다.
자숙은 물론이고
각종 광고 계약 취소와 같은 큰 경제적 타격도 입는다.
정작 찐공인은
재산이 몰수되거나 직무를 박탈당하는 일은 적은데 말이다.
지금 이슈되는 연예인 마약 논란도 마찬가지다.
술과 미모를 파는 젊은 여성은
광대답게 광대짓을 했으니 관심 밖이다.
심각한 의료법을 위반하고
마약 공급책으로 의심되는 사람 또한
의사 가운을 입은 명예로 인해
우리의 관심 밖으로 벗어난다.
남은 질타 대상은
광대 주제에 대중의 사랑과 부유함을
갖고 있는 연예인밖에 없다.
부유한 광대가 몰락하는 과정을
'이제서야 펼쳐지는 진정한 광대의 드라마'를 보듯 소비한다.
우리가 연예인을 대하는 심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연예인이 공인의 잣대에서 해방되는 경우는 없을까?
연예인이 건물을 사면,
공인의 잣대에서 해방된다.
천민이었던 광대가 돈을 모아
으리으리한 기와집을 사버린 경우와 같다.
기껏해야 비단 옷이나
마차 정도를 끌고 다니는 것으로
광대를 존경하기엔
평민의 자존심은 그리 낮지 않다.
마찬가지로
연예인이 명품 옷을 입고
람보르기니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공인의 잣대에서 해방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청담동에 100억 대 건물을 매입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처럼
배가 좀 아프고 말기엔
건물주가 된 연예인은
너무나 높은 존재가 돼버린다.
어나더레벨의 재산 차이에 의해
평민이 광대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요구할 우 있던
마지막 권한마저
박탈 당하기 때문이다.
연예인이면 마약을 해도 된다거나
연예인을 지금보다 존중해야 한다는 글이 아니다.
누군가 연예인을 욕을 하든 말든
그건 또 그 사람의 자유이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를
쉽게 지적하고 손가락질할 때
그 손가락의 주인인 나는
어떤 마음인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당연하게도 이 차이를 알고 하는 비판과
그렇지 않은 비판도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비판은 사람이냐는 물음에
도움이 되는 글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