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수선화에게>, 외로운 밤이 올 때

연휴가 완전히 끝나고 혼자인 저녁, 당신에게 건네는 한 문장

by 황준선

연휴의 잔상이 완전히 사라졌다. 일상은 제자리를 찾았고, 사람들은 각자의 궤도에 올라탔다. 바쁜 하루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조용한 방 안에 혼자 남는다. 그 조용함이 불쑥 무겁게 느껴지는 밤이 있다. 오늘은 '슬픔의 시인'이 쓴 열두 줄에서, 외로움을 다루는 법이 아니라 외로움과 함께 사는 법을 이야기한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정호승의 자취

이 문장을 쓴 시인에게도 외로움은 일찍 찾아왔다.

정호승, 1950년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대구로 이사했고, 중학교 1학년 때 은행원이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다. 도시 변두리에서 가난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고등학생이 된 그를 살린 건 글이었다.


그는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이 모두 당선된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그러나 그를 대중의 마음에 새긴 건 언제나 시였다. 1979년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를 냈다.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표제시의 이 구절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실리면서 수많은 학생들의 마음에 처음으로 '시'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문학계에서는 그를 '슬픔의 시인'이라 불렀다.


<수선화에게>는 1998년 출간된 일곱 번째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 수록되었다. 열두 줄,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일곱 번 등장하는 이 시는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면서 '국민시' 반열에 올랐다.


정호승은 외로움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왜 외로운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연휴 이후에 오는 외로움은 특별한 종류다

연휴 동안에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

부모님이든, 형제든, 친구든.


밥상에 사람이 앉아 있고, 거실에 소리가 있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이 불편했더라도, 소음이었더라도, 어쨌든 '함께'였다.


그리고 다시 혼자가 된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이것은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연휴 후의 '혼자'는 평소의 '혼자'보다 더 선명하다.

사람의 온기를 잠깐 느꼈다가 다시 떨어져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비교 대상이 생긴 것이다.


이때 느끼는 감정을 외로움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외로움은 해결해야 할 문제일까?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진단이 아니라 인정이다

이 문장을 처음 읽으면, 위로처럼 들린다.

"외로워도 괜찮아"라는 뜻으로.


그런데 다시 읽으면 조금 다르다.

이건 위로가 아니라 사실의 확인이다.


정호승은 "외로우니까"라고 했다.

'외로워도'가 아니다.

'외로우니까'.


외로움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외로운 것이 정상이고, 외롭지 않은 것이 예외라는 뜻이다.


이 구분이 중요하다.

외로움을 '문제'로 보면,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긴다.

그런데 외로움을 '조건'으로 보면, 그 압박이 줄어든다.


해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저 그렇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는 다음 문장이 이것을 확인해 준다.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늘 함께 있고, 함께 가는 것이다.

tempImageBGKSib.heic 산 그림자가 마을로 내려오는 풍경

수선화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것

정호승이 이 시의 제목을 '수선화에게'라고 붙인 건 우연이 아니다.

수선화는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에서 이름을 가져온 꽃이다.


물가에서 자신의 모습에 반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 청년.

결국 그곳에서 죽어 꽃이 되었다는 이야기.


수선화는 실제로 물가에 피며,

고개를 숙인 채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보인다.


나르키소스를 우리는 보통 자기애의 상징으로 읽는다.

"나르시시트에게 수모를 겪었다"라며 유행처럼 이 단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호승은 다르게 읽었다.


물에 비친 자기 모습밖에 볼 수 없었던 사람,

아무도 곁에 오지 않았던 사람,

혼자서 자기 자신만 바라보아야 했던 사람.

그것은 자기애가 아니라 극한의 외로움이다.


그래서 시인은 수선화에게 말을 건다.

"울지 마라." 너만 외로운 게 아니라고.

새도, 산 그림자도, 종소리도 외롭다고.

하느님도 가끔 외로워서 눈물을 흘린다고.

세상에 외롭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이것이 이 시의 위로 방식이다.

"너를 외롭지 않게 해 줄게"가 아니라

"세상 전체가 외롭다"는 것.


역설적이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방법이다.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시의 네 번째 줄이 아프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연휴가 끝나고 조용해진 밤에,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누가 연락하지 않을까.

카톡 알림이 뜨지 않을까.

인스타 스토리에 반응이 오지 않을까.

그 기다림이 외로움을 키운다.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외로운 게 아니라,

기다린다는 행위 자체가 외로움을 만드는 것이다.


정호승은 기다리지 말라고 한다.

대신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라고 한다.

눈길이든 빗길이든 걸어가라는 것.


외로움의 반대말은 만남이 아니라 걸어감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놓인 길을 걷는 것.

tempImageJXdTOc.heic 빈 방 책상에 덩그러니 놓인 전화기

외로움은 나쁜 감정이 아니다

정호승이 평생 외로움을 썼다는 건,

외로움을 없애려 한 게 아니라 외로움 안에서 글을 발견했다는 뜻이다.


첫 시집부터 열네 번째 시집까지,

50년간 그는 외로움 옆에 앉아서 시를 썼다.


연휴가 끝나고 혼자인 밤에, 외로움이 밀려온다면 — 그건 나쁜 감정이 아니다.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외로움을 없애려 하지 않아도 된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보아도 좋고,

이불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있어도 좋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마을로 내려오고,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외로운 밤은 지나간다.

그래도 괜찮다.

그것이 사람이니까.



오늘의 연습: 오늘 밤,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기

역설적인 미션이다.

외로운 밤에 연락하지 말라니?


하지만 정호승의 말을 한 번만 따라가 보자.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오늘 밤만큼은 핸드폰을 멀리 두고, 조용한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보자.


음악을 틀어도 좋고,

창밖을 봐도 좋고,

이 시를 소리 내어 읽어봐도 좋다.


외로움이 밀려와도 그냥 두자.

견디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두 손을 꽉 쥐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서서 바람을 맞듯 그렇게 견디는 것.


그리고 내일 아침,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해 보자.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서.




조용한 방 안에서 혼자 있는 밤에.

당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싶다면,

<착하고, 섬세하고, 독특하고, 완벽주의자인 '당신을 위한 문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