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연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에 대하여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당신에게 건네는 한 문장

by 황준선

연휴가 끝났다. 우리는 돌아왔다. 같은 지하철, 같은 출근길, 같은 자리, 같은 화면. 연휴 전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떠났다 돌아온 것뿐인데, '돌아왔다'는 말이 유독 무겁다. 오늘은 연어 한 마리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에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왜 패배가 아닌지를 이야기한다.


"쉬운 길은 길이 아니야."


안도현의 자취

안도현, 1961년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낙동강이 흐르는 시골에서 자랐고,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이 당선되어 등단했고,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전라북도 익산의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1997년 교직을 떠나 전업 작가가 되었다. 교사에서 시인으로 — 그 역시 하나의 자리를 떠나 다른 자리로 간 사람이다.


1996년 3월, 그는 <연어>라는 얇은 책 한 권을 냈다. 은빛연어 한 마리가 동료들과 함께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다. 여정 중에 누나연어를 잃고, 눈맑은연어와 사랑에 빠지고, 폭포 앞에서 쉬운 길과 어려운 길 사이에서 선택을 하고, 마침내 모천에 도착해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안도현이 낙동강 옆에서 태어나 강물을 보고 자란 사람이라는 것은, 연어를 이해하는 데 빠질 수 없는 배경이다. 강은 한쪽으로만 흐르지만, 연어는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간다. 시인은 그 역류 안에서 삶의 이야기를 발견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의 시로도 유명해서 '연탄 시인'이라고도 불리는데

정작 본인은 그게 싫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연어를 골라왔다^^


연휴 이후의 '돌아감'은 왜 무거울까

연휴는 떠남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장소, 다른 사람, 다른 속도로 며칠을 보낸다.

그리고 돌아온다.


문제는 이 '돌아감'이 진보가 아니라

회귀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떠나기 전의 자리로 그대로 돌아왔을 뿐이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느낌.


이때 연어를 떠올려보자.

연어도 돌아간다.

바다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쳐,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그런데 연어의 돌아감을 아무도 '패배'라고 부르지 않는다.


연어에게 돌아감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연어의 모천회귀는 본능이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바다에서 강으로, 강에서 상류로, 상류에서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물수리에게 잡히고, 곰에게 잡히고, 체력이 바닥난다.

돌아가는 것이 떠나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


<연어>에서 은빛연어가 폭포 앞에 섰을 때, 두 가지 길이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어도(魚道) — 쉬운 길.

그리고 폭포를 직접 뛰어넘는 연어의 길 — 어려운 길.


연어들이 외친다.

"쉬운 길은 길이 아니야."


이 장면이 연휴 후의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런데 쉬운 길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진짜 길이다.

강물이 흐르는 풍경

돌아가는 것은 같은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다

연어는 태어난 강으로 돌아간다.

같은 장소다.

그런데 같은 연어가 아니다.


바다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친 연어,

누나를 잃은 연어,

사랑을 알게 된 연어,

폭포를 뛰어넘은 연어.

장소는 같아도 그 자리에 선 존재는 완전히 다르다.


연휴 후 다시 주말을 맞이한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명절에 부모님 얼굴을 본 나,

오래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나,

혼자만의 시간에서 외로움을 견딘 나는

연휴 전의 나와 같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돌아간 우리는 떠나기 전의 우리가 아니다.


<연어> 속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같다.

"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같은 문장인데, 이야기를 모두 읽고 난 뒤 다시 만나면 완전히 다르게 읽힌다.

같은 자리인데 다른 무게.

그것이 돌아감의 의미다.


연어는 연어로 살아야 연어다

은빛연어는 이런 생각을 한다.

연어는 연어의 욕망의 크기가 있고,

고래에게는 고래의 욕망의 크기가 있다고.


고래가 연어의 욕망을 가지면 이미 고래가 아니듯,

연어도 연어로 살아야 연어라고.


연휴가 끝나고 일상에 돌아오면, 비교가 시작된다.

SNS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여행 중이고,

누군가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획했고,

누군가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

나는 같은 자리에 돌아왔을 뿐인데.


그때 은빛연어의 말이 필요하다.

나는 나의 크기로 살면 된다.

고래의 크기로 살 필요가 없다.


돌아감 안에 희망이 있다

은빛연어는 눈맑은연어에게 묻는다.

희망을 찾았느냐고.


눈맑은연어가 대답한다.

"희망을 찾지 못했어.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을 거야.
한 오라기의 희망도 마음속에 품지 않고 사는 연어들에 비하면
나는 행복한 연어였다는 생각이 들어."


희망을 찾지 못해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

이것이 돌아감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연휴가 끝나고 달라진 것은 없어 보여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 행위 안에 이미 무언가가 있다.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

폭포를 거슬러 오른다는 것.


그 안에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