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괜찮은 척해온 당신에게 건네는 한 문장
하루가 끝난다. 오늘도 별일 없었다. 회의를 했고, 메일을 보냈고, 퇴근을 했다. 누군가 "오늘 어땠어?"라고 물었으면 "뭐, 그냥 그랬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이 당연해진 지 꽤 오래되었다. 오늘은 배추에게 말을 거는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
"나는 너희로 하여 기쁠 것 같아."
나희덕, 1966년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녀는 그네를 타다가 하늘이 주황색으로 물드는 것을 보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그 아이는 중학생이 되어 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나희덕의 시에는 식물이 많다. 말없이 자라는 존재에게 말을 거는 사람. 그것이 나희덕의 시다.
1994년 두 번째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를 펴냈다. 이 시집에 <배추의 마음>이 실려 있다. 농약 없이 배추를 키우면서, 여름내 밭둑을 지날 때마다 배추에게 "잘 자라 기쁠 것 같아"라고 말을 건네는 사람의 이야기. 늦가을에 배추포기를 묶어주면서, 혹시 배추벌레가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할까 걱정하는 사람의 이야기.
문학평론가들은 그의 시를 '따뜻함과 단정함의 미학'이라 부른다. 아주 하찮은 것까지도 놓치지 않고 보는 눈, 그들의 소리를 듣는 귀, 지치고 힘든 삶을 보듬는 손.
시인 자신은 이렇게 말했다.
"삶의 깊이를 헤아리고 담아내는 일이란 결국 그것의 비참함과 쓸쓸함을 받아들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괜찮아?"라고 잘 묻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넘어지면 누군가가 달려와 "괜찮니?"라고 물어주었다.
학교에서 울고 있으면 친구가 와서 "왜 울어?"라고 물어주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그 질문이 사라졌다.
물어보는 것이 실례이며,
묻지 않는 것은 예의가 되었다.
30대엔 각자 사는 이야기,
40대엔 자녀 이야기,
50대엔 은퇴와 자식 결혼 이야기
60대엔 온통 건강 관련 이야기들 뿐이다.
여보세요?라는 말처럼 의미 없이 사용하는 안부가 아니라,
진심을 다해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사람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괜찮음 속에 갇혀 있다.
나희덕은 배추에게 말을 건다.
"나는 너희로 하여 기쁠 것 같아."
배추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을 기대하고 한 말이 아니다.
그냥 지나가면서, 잊지 않고, 한마디를 건넨 것이다.
안부란 그런 것이다.
시를 자세히 읽으면 묘한 구조가 보인다.
화자는 배추에게 말을 건네지만,
그 말은 사실 화자 자신에게도 필요한 말이다.
"나는 너희로 하여 기쁠 것 같아." 이 말은 배추를 위한 말이면서,
동시에 기쁠 이유를 찾고 싶은 사람의 말이다.
안부를 묻는다는 것은 상대를 위한 행위만이 아니다.
묻는 사람 자신도 그 질문을 통해 연결된다.
"괜찮아?"라고 묻는 순간,
묻는 사람도 자신이 괜찮은지를 돌아보게 된다.
이 시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배추를 묶어주면서 배추벌레를 걱정하는 장면이다.
배추벌레는 배추를 갉아먹는 존재다.
배추를 키우는 사람에게는 해충이다.
그런데 화자는 배추포기를 묶으면서,
혹시 그 안에 배추벌레가 갇혀 나오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한다.
시인이 자연주의라서 그럴까? 글쎄... 단순한 자연 사랑만은 아닌 것 같다.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마저도 살피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직장에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
가정에서 나를 지치게 하는 관계,
마음속에서 나를 갉아먹는 불안 등.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늘 발생하는 일이고,
늘 함께하는 마음이다.
배추의 마음이다.
시인은 묻는다.
"꼭 동여매지도 못하는 사람 마음이나
배추벌레에게 반 넘어 먹히고도
속은 점점 순결한 잎으로 차오르는
배추의 마음이 뭐가 다를까?"
다르지 않다.
갉아먹히면서도 속을 채워가는 것,
그것이 사람이 사는 방식이다.
시의 마지막 줄.
"배추 풀물이 사람 소매에도 들었나 보다."
배추를 돌보다 보면 소매에 풀물이 든다.
물리적으로 배추의 흔적이 사람에게 옮겨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한 줄은 물리적 의미를 넘어선다.
배추를 살피고, 말을 걸고, 걱정한 그 시간이 사람의 마음에도 스며들었다는 뜻이다.
안부를 건네는 행위가 건네는 사람의 마음도 물들인다.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괜찮아?"라고 묻지 않았다면,
한번 물어보자.
꼭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베란다의 화분에게, 오래된 물건에게, 지나가는 고양이에게.
말을 거는 순간,
풀물이 소매에 들 듯,
그 마음이 나에게도 돌아온다.
가족이어도 좋고, 동료여도 좋고, 오래 연락하지 않은 친구여도 좋다.
조건이 하나 있다.
용건 없이 물어볼 것.
"그거 다 했어?" "언제 와?" 같은 용건이 아니라,
그냥 "요즘 괜찮아?" 한마디.
받는 사람은 당황할 수도 있다.
너무 오래 들어보지 못한 질문이니까.
그런데 그 당황 속에,
오래 닫아두었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