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나이 듦은 거울에서 오지 않았다. 흰 머리카락이 보일 때도, 계단에서 숨이 찰 때도, 후배가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도 —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알았다. 아, 나도 여기까지 온 것이구나. 오늘은 그 순간을 정확히 써놓은 시인 이야기를 한다. 동생의 관이 내려가는 것을 지켜본 뒤, 1년을 꿈에 시달리며 한 줄씩 써 내려간 시.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박목월, 1915년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났다. 본명 박영종. 대구 계성중학교 3학년 때 잡지 <어린이>에 동시 <통딱딱 통짝짝> 이 실리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졸업 후 금융조합에 들어갔지만, 시를 놓지 못했다. 1939년, 본격적으로 시인의 길에 들어섰다.
1946년, 해방 직후 조지훈·박두진과 함께 3인 시집 <청록집>을 냈다. 초기의 박목월은 산과 사슴과 달빛의 시인이었다. 현실과 떨어진 아름다운 자연, 민요적 가락, 동양화 같은 여백. 그런데 6.25 전쟁을 겪으면서 시가 달라졌다. 산에서 내려와 원효로 골목으로 들어왔다. 다섯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내 신발은 십구문 반"이라고 쓰는 가난한 가장이 되었다.
1964년 12월, 막내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시인의 나이 마흔아홉.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1년 동안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그런데 꿈에 동생이 자꾸 나타났다. 턱이 긴 얼굴이 돌아보며 "형님!" 하고 불렀다. 1년쯤 지나니 날 것 같던 슬픔이 가라앉고, 동생이 죽었다는 사실 자체가 말갛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심경에서 <하관>을 완성했다.
훗날 시인 김종길은 이 시를 두고 "마지막 세 행은 시의 최고의 경지"라고 평했다. 박목월은 이후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시 전문지 <심상>을 발행하고,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13년간 맡았다. 1978년 3월,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3세. 용인 모란공원에 잠들었다.
시의 첫 문장은 "관(棺)이 내렸다"이다.
그다음 행,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
관을 땅속에 내리는 장면인데,
동시에 시인 자신의 가슴 안에 무언가가 내려가는 감각이다.
두 가지 '내림'이 겹치는 듯하다.
관이 내려가고, 마음이 내려가고.
이 시에는 형용사가 거의 없다.
슬프다고 쓰지 않았다.
괴롭다고 쓰지 않았다.
그냥 일어난 일을 서술한다.
과장된 감정이 없는 시는 나에게 울림을 준다.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주고 /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 좌르르 하직했다."
하직(下直)이라는 말에 두 가지 뜻이 있다.
흙을 아래로 떨어뜨렸다는 뜻, 그리고 작별을 고했다는 뜻.
한 단어에 행위와 이별이 함께 들어 있다.
나이를 먹으면, 특히 상주가 되어보았다든가, 상을 치러보았다면 아는 기분이다.
이 장면을 안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
검은 넥타이를 풀면서 느끼는 그 감각.
슬픔이라기보다는 무게.
아, 이런 차례였고 다음은 또 어떤 차례가 있겠구나 하는 그런 공기.
장례 후, 시인은 꿈에서 동생을 만난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 / 형님! 불렀다. / 오오냐. 나는 전신(全身)으로 대답했다."
전신으로 대답했다.
입이 아니라 온몸으로.
꿈속에서 우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존재 전체로 반응한다.
먼저 간 사람이 꿈에 나타나서 이름을 부를 때,
우리가 하는 대답은 말이 아니다.
몸 전체가 떨리는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덧붙인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내 대답은 미치지 못한다.
이승의 소리는 저승에 닿지 않는다.
이 한 줄에 나이 듦의 본질이 있다.
점점 내 목소리가 미치지 못하는 곳이 늘어간다는 것.
떠난 사람에게, 지나간 시간에게, 젊었던 나에게...
아무리 불러도 닿지 않는 곳이 생긴다는 것.
시의 마지막 세 행.
"다만 여기는 / 열매가 떨어지면 /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이것이 이 시의 끝이다.
살아있는 이 세상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그게 전부다.
소리가 들리는 동안이 삶이고, 더 이상 들리지 않으면 삶이 끝난다.
시인은 죽음을 거창하게 정의하지 않는다.
감각이 있는 동안이 삶이라고, 그것뿐이라고.
열매가 떨어지는 것은 자연의 순환이다.
맺히고, 익고, 떨어진다.
인생도 그렇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의 관이 내려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 '툭'이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이 듦을 처음 느끼는 순간은 이런 것이다.
거울이 아니라 관 앞에서.
몸이 아니라 마음에서.
가까운 사람이 떨어져 나갈 때 "아, 나도 가지에 매달린 열매구나" 하는 자각.
그 자각이 오면 세상이 다르게 들린다.
바람 소리도, 빗소리도, 그리고 열매 떨어지는 소리들은 이전에는 배경 소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군가와의 이별의 소리,
내게 남아있는 시간의 소리로 들린다.
바람이 창문을 흔드는 소리. 누군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 식탁에 그릇이 놓이는 소리. 지금 이 순간에 들리는 소리들이, 살아 있기 때문에 들리는 소리라는 것을 한 번만 떠올려보세요. 청각을 활용한 거창한 깨달음?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아, 들린다" 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이 글을 읽고 그다음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온 소리가 무엇이었나요?
살아 있다는 증거는 거창한 데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