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알트만, 이사회, 그리고 MS가 갖는 주관적인 마음은 무엇일까?
우리는 객관성을 안정적이며 이상적이라고 느끼지만,
사실 인간의 삶은 주관성 그 자체이다.
샘 알트만(Sam Altman)은
챗지피티(chatGPT)로 유명한 OpenAI의 공동 설립자이다.
OpenAI의 이사회는
알트만이 의사소통에 있어 일관되게 정직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알트만을 해고했다고 밝혔다.
("Altman had not been consistently candid in his communications")
consistent = 일관적인
candid = 솔직한, 정직한
그리고 트위치(Twitch)의 CEO였던
Emmett Shear가 임시로 대표직을 맡게 되었다.
OpenAI의 대주주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의 하락이
알트만 해임에 대한 우려를 반영하는 듯했다.
그리고 한국 시간으로 2023년 11월 20일,
마이크로소프트(MS)는 알트만을 영입하면서
주가는 다시 반등하였고
사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듯하다.
이 사건을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OpenAI는 2015년에 샘 알트만, 일론 머스크와 다른 투자자가 세운 비영리단체다.
이사회 멤버는
Adam D'Angelo, Tasha McCauley, Ilya Sustskever, Helen Toner 가 있다.
D'Angelo는 유저끼리 질문하고 답하는 Quora의 창업자이다.
McCauley는 RAND Corporation에서 시니어 과학자이자 AI 관련 연구소와 단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Sustskever는 이사회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공동 창립자며, OpenAI의 신경망 연구에 핵심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Toner는 AI가 세상에 끼치는 영향을 담당하고 있으며, Georgetown Center for Security and Emerging Technology의 전략과 자금 관련 이사직을 역임하고 있기도 하다.
알트만의 해고 사유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리고 해고 사유 자체를 다루는 글이 아니지만,
표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OpenAI의 운영 방침과 알트만의 행보가 불일치했을 수 있다.
앞서 설명한 표면적 해고 사유인 "솔직하지 못한 의사소통"이
[수익성 vs. 창립 목적] 과의 대결구도로 보는 시각이 많다.
OpenAI의 사명은 아래와 같다.
AI의 발전의 목적은 모든 인류에게 혜택을 주고,
인류를 해치거나 권력을 과도하게 집중시킬 수 있는 사용을 피하며,
다른 연구 및 정책 기관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인공지능을 착한 목적으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2019년 openAI는
OpenAI LP(Limited Partner = 유한책임조합원 = 아무튼 비영리단체는 아님)를 설립하였다.
투자 유치에 박차를 가하게 되며
2023년 1월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00억 달러라는 거액의 투자를 받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사회는 알트만의 행보가 초기 설립 목적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즉, 이사진은 알트만이 ChatGPT 기술의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로
그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회사를 운영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기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던
스티브 잡스가 겹쳐 보이기도 해서
흥미로운 사건으로 기록될 것 같다.
그래서 이 사건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건 멀까?
AI 기술의 위험성?
자본주의?
자유?
대기업의 횡포?
땡-
바로 주관성 연구에 대한 중요성이다.
이 사태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객관성으로 대표되는 최신 과학 AI 조차
인간이 가진 주관성에 의해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ChatGPT 또는 생성형 AI의 기술은 객관적이다.
우리가 그 기술에 대한 설명을 알아듣기가 어려울 뿐,
AI 기술이
한국에 있든 미국에 있든,
춥든 덥든,
키가 큰 사람이 보든 뚱뚱한 사람이 보든,
언제 어디서나 객관적으로 동일하게 존재한다.
그렇지만 인간이 가진 심리는 그렇지 않다.
(만약 표면적으로 나온 갈등 사유가 맞는다고 한다면)
알트만에게 ChatGPT는 투자를 유치하고 수익을 가져다줄 사업 아이템이다.
반면에,
이사회의 사람들에게 ChatGPT는 과학의 숭고한 정신을 반영하는 아이템일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애플과 구글을 찍어누를 기회로 보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어떤 '마음(주관성)'을 가진 사람이 보느냐에 따라서
'객관'적인 것에 '의미'가 더해지는 것이다.
더 쉽게 비유를 해보자.
'나무'는 객관적이다.
나무가 어떤 분자로 이루어져 있고,
얼마나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산소를 뱉는지
'객관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나무가 가진 '의미'는 보는 사람의 주관성에 의해 부여된다.
누군가는 어릴 적의 추억,
의자를 만들 재료,
지켜야 할 자연 등.
나무에는 주관적인 마음이 없기 때문에
나무 심리란 없는 것이다.
ChatGPT도 마찬가지다.
ChatGPT는 어떤 질문이든지 간에 대답을 쏟아내지만,
객관적인 기술로 탄생한 ChatGPT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ChatGPT에게는 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사회, 알트만, MS 등이 포함된 이 다툼이
각자가 어떤 마음으로 AI 기술을 바라보는지
그들의 주관성이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부딪히는지 유념하면서 관찰하면
훨씬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여담으로
누군가 나에게 AI 기술의 위험성에 대해 묻는다면,
ChatGPT의 악영향, 부정적 파급력을 수치화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나쁜 목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을 연구를 해야 한다고 답할 것이다.
AI 기술은 객관적일 뿐, 주관이 없기에 그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일이다.
성균관대학교 유희승 박사가 연구한 결과물이 있다.
대학생의 AI 챗봇 이용동기에 관한 주관성 연구
(링크를 원할 시 댓글 남겨주세요)
이 연구는 대학생이 AI 챗봇을 이용하는 주관적인 마음에 대해 연구했다.
만약 읽어볼 기회가 있다면
AI 기술과 주관성 연구가 가진 의미에 대해 좀 더 이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