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
의리: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도리.
그러나 우리의 통념 속 의리란, '우리'와 가깝다.
너랑 나랑 같은 팀이니 밀어주고, 당겨주고
실수하면 감싸주고, 잘하면 더 칭찬하고
힘을 합쳐 으쌰 으쌰 잘 해보자는 그런 의리 말이다.
지금 북한에서 김정은이 '개방성(Openness)'이 높은 사람이 겪는 고충을 갖고 있다면
남한에서 윤석열은 높은 '외향성(Extroversion)'의 고충을 보여준다.
외향성의 개념은 의외로 간단하다. “아무리 피곤해도 친구가 부르면 나가는 사람”이다.
외향적인 사람은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고, 금세 친분을 쌓는다. 그리고 이미 형성된 관계에서는 상대를 잘 챙기며,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특히, 한국 문화에서 외향성은 독특하게 규범과 위계를 중시하는 성향과 결합한다.
“형님, 제가 잘하겠습니다. 술 한 잔 사주십쇼! 하하.”
“야, 그래도 내가 형인데. 됐다, 지갑 넣어둬. 내가 낸다.”
이러한 대화를 떠올리면 한국식 외향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쉽다.
1980~90년대 한국에서는 외향성이 사회생활의 필수적인 덕목으로 여겨졌다. 당시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동일시되곤 했으며, 사람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외향적 태도가 곧 미덕이었다.
그래서 외향적인 사람들은 종종 "사람을 통한 문제 해결" 방식을 선호한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전문 지식을 쌓거나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기보다는, "아는 사람"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 “내가 아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에게 맡기면 된다”는 식이다.
이러한 관계 중심적 태도는 이득과 손해를 계산하기보다는, 술 한 잔 기울이며 마음을 터놓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상대와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라는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문제를 큼지막하게, 더 유연하게 해결하고자 한다.
하지만 외향성에는 명확한 한계도 존재한다.
외향적인 사람들에게는 디테일한 작업이나 꼼꼼함이 필요한 일이 고역일 수 있다. 가만히 앉아서 세밀하게 무언가를 정리하기보다는,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대신 지는 방식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조직 내 갈등 상황에서도 외향적인 사람은 다소 독특한 태도를 보인다.
논리적으로 인과관계와 손익을 따지기보다는, “내가 회식비를 쏠 테니 다 같이 술 한 잔 하고 끝내자”는 식으로 갈등을 단순화하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관계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상대에게는 완전히 달라진다. 외향적인 사람은 자신이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 사람에게는 한없이 유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대에게는 “서서 죽을지언정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의리남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통한다.
그는 친구, 가족, 직장 동료까지 모든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누구에게나 최선을 다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런 의리남에게도 한 가지 큰 고민이 있다.
바로 한정된 시간과 환경 속에서 여러 사람을 동시에 챙겨야 할 때다.
아래와 같은 상황이 동시에 발생했다고 생각해보자.
아내의 기념일
친구의 승진 파티
직장 상사의 회식 요청
그러면 의리남은 이 세 가지 약속을 모두 잡는다.
“아 그럼 그럼, 당연히 가야지~”라며 흔쾌히 승낙한 약속들이다. 왜냐하면, 각 관계가 그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는 누군가의 요청을 거절하는 순간 상대가 상처받을까 걱정하며,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모두를 챙기고 싶어 한다.
약속의 날이 다가오면 의리남은 고민에 휩싸인다.
“어디부터 가야 하지?”
“이 사람은 내가 없으면 섭섭해할 텐데…”
“다른 사람도 나를 기다릴 텐데…”
결국 그는 우왕좌왕하며 모든 약속을 완벽히 소화하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망을 안겨주게 된다.
아내는 “왜 이렇게 늦었어?”라고 서운해하고, 친구는 “승진 축하 한 마디라도 직접 들을 줄 알았는데…”라며 섭섭해하며, 상사는 “아무리 의리가 있어도 기본은 지켜야지”라는 눈초리를 보낼 수 있다.
이런 상황을 흔히 스케줄 조정 능력 부족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의리남의 고민은 단순한 시간 관리 실패로 치부하기에는 깊은 맥락이 있다. 그는 시간 관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각각의 관계가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에 이런 불상사가 생긴다.
그에게는 누구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한 사람이라도 챙기지 못하면 자신의 의리가 부족했던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한국에서 자주 일어나는 상황처럼 느껴졌는가?
그렇다면 외향성이 높은 사람의 특징을 잘 이해한 것이다. 의리 대통령은 그 이름처럼 자신이 챙겨야 할 사람들이 많다.
과거 검사 시절, 이런 덕목은 그에게 강점으로 작용했다.모든 검사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조직 문화에서는 동료와 후배에게 의지할 수 있는 의리파 형님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대통령직은 전혀 다른 무대다.
이 자리는 매 순간 정무적, 정치적, 행정적 판단을 요구한다. 때로는 내키지 않더라도 냉정하게 이득과 손해를 따져야 하고, 상황에 따라 잔인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과거처럼 “다 같이 모여서 허심탄회하게 해결하자”는 말도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다양한 인물이 얽혀 있는 정치판 한가운데 서는 일이다.
그 앞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당장 이익이 없으면 등을 돌리는 사람
계속 새로운 시도를 주장하는 사람
지시만 기다리며 따르는 사람
의리 대통령은 이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잘 유지하고 싶다. 그는 “다 같이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하지만 정치판에서는 의리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의리 정책은 주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뿐 아니라, 결국 대통령 본인에게도 상처를 남긴다.
의리 대통령은 자신과 관계를 형성한 사람들과의 모든 순간이 진심이었다고 믿는다.
“다 같이 으쌰으쌰하며 힘을 합치자”고 외쳤던 날들, 함께 파이팅을 외쳤던 순간들. 그는 이 순간들이 진정성으로 가득 찼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상황은 그의 기대와 다르게 흘러간다. 어떤 사람은 그를 떠나고, 어떤 사람은 등을 돌리며, 어떤 사람은 더 이상 응답하지 않는다.
그는 속으로 묻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모두 진심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비굴하게 고개를 숙여가며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의리의 저주가 발동되고, 그는 악순환에 빠진다.
미국에서 '의리'의 개념은 다르지만, 트럼프도 외향성이 높은 인물이다.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즉 나와 관계가 좋은 사람들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그리고 일명 '가오가 상하는 일'은 끔찍히도 싫어한다. 그의 외향성이 주는 매력은 지금의 서구 사회가 갖는 불만 속에서 돋보인다. 수 십, 수 백년 전에는 '인종의 용광로'와 같은 메시지를 내세우며 모두가 자유를 찾아 미국 땅을 밟았다. 그런 창의성과 자유를 위한 헌신이 미국을 지구 최강의 나라로 성장시켰고, 그래서 '세계 경찰'의 노릇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런 눈부신 영광을 뽐내기보다는, 그 안에서 치솟는 집값이나 개개인이 더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인식이 더 팽배해진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지구에서 가장 강하고 영향력을 가진 나라다.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기 싫어하는 외향적인 사람이 가장 즐길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니 트럼프가 여러 나라 정상들을 만날 때 미국 우선주의를 내보이며 "네가 싫어도 나한테 뭘 할 수 있는데?"라는 태도가 지지자에게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