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판매 철회
제목은 "과학은 어떻게 우리를 속이나"이지만,
사실 과학은 누구도 속이지 않는다.
우리가 과학에 의해 스스로를 속이는 것뿐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2020년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접종을 시작한 백신이기도 하다.
그런 아스트라제네카가 자발적으로 시판 허가를 철회했다.
혈전증과 같은 부작용을 공식 인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사태이다.
이미 접종을 마친 사람에게 가장 궁금한 질문은
"나에게도 부작용이 나타날 것인가?"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앞으로 백신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은 더 늘어날 것이다.
더 나아가 내 몸의 이상 증상을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탓하는 사태도 펼쳐질 것이다.
왜냐하면 백신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느냐 마느냐는
우리가 그 백신에 대한 효과를 얼마나 믿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
인간의 몸은 그 마음 변화에 따라 반응하기 시작한다.
"백신에 효과가 있고 없고는 그 백신의 효과를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이런 주장은 마치 극우주의자, 음모론자, 또는 안아키 신봉자 같은 취급을 받곤 했다.
옥스퍼드 연구진이 만든 아스트라제네카를 네가 뭔데 믿지 못하느냐는 것이 주된 이유였고,
백신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것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상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나는 심리를 공부하는 '과학자'이다.
과학자는 당연히 과학으로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한다.
코로나와 백신에 기대했던 당시 바램이 그랬다는 것이고, 그에 따른 과학적 현상이 지금 펼쳐지고 있는 것뿐이다.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되고 시판될 당시에는 분명히 과학적인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부작용을 인정하고 시판이 철회된 것도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심지어 그 백신을 승인하고 다시 그 승인을 철회하는 사람도 똑같다.
이럴 때 우리가 늘 믿고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과학이 서로 싸우는,
'되는 이유'와 '안 되는 이유'를 동시에 접하는 당혹스러운 경험을 한다.
좀 더 가벼운 예시를 들어 이 상황을 설명해 보자.
우리는 심심치 않게 '커피'에 대한 기사를 접한다.
하루 한 잔 커피는 심장병 예방에 좋아...
어디선가 봤을 법한 제목이 아니던가?
그리고 몇 달 후에는 이런 기사를 접한다.
매일 마시는 커피가 수분 부족을 유발...
왜 이런 예시를 들었는지 벌써 감이 올 것이다.
내가 심장병 예방에 좋다는 생각으로 커피를 마시면 몸에 좋고
수분 부족을 걱정하며 마시면 커피는 좋지 않다.
물론 둘 다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되어 있다.
마치 코로나 백신을 맞아야 하는 이유도 사실이고, 맞지 않아도 되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과학은 우리에게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다.
내가 어떤 마음 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과학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뿐이다.
나의 심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과학, 과학, 과학만 쫒다 보면, 그 과학에 속아버린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과학에 의해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속인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과학을 믿고 따라야 할지가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느냐를 스스로 잘 이해하는 것이다.